소작농입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딱 멈췄던 작년 초가 생각이 난다. 사람을 모으고 만나는 게 일인 나는 할 일이 없었다. 한 해 계획은 정해져 있지만, 사람을 만날 수도 만나서도 안 되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슬기로운 집콕생활’을 위하여 틈틈이 지인들과 책, 영화, 삼시세끼를 공유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유가 생기자 멀리있는 지인들에게 전화나 문자 메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서서히 집콕생활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집 생활에 맞춰 작게 만들고 있었다. 남들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혼자만의 생활이 편해졌다. 가족조차도 내 생활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마음은 작아졌다. 사소한 일이지만 불만이 생겼다. 청소며 밥이며 집안일을 내가 다하는 기분이 들었고, 밖에 나가지 않는 아이들의 답답함과 그걸 지켜보는 부모의 답답함은 자주 부딪혔다. 텔레비전에서는 가정폭력 뉴스가 빈번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 상황은 더 안 좋았다. 학교는 돌아가면서 쉬고 일은 불규칙했다. 답답한 마음에 꽃구경이라도 나갔다가 sns에 올리면 이 시국에 나들이를 한다고 욕을 먹었다. 야외라고 해봤자 내가 사는 동네고, 마스크 챙기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했지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답답하고 집밖에서는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마음 편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 친구가 농사를 같이 지어보자고 했다. 300평 정도의 땅을 친구 넷이 지으면 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 친구가 과실수와 꽃을 많이 심을테니 나머지는 원하는 먹거리를 심어보라고 했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아들 셋을 데리고 원예사에 가서 모종을 샀다. 토마토, 꽈리고추, 오이고추, 옥수수. 아직은 이름표로만 알 수 있는 채소들을 원하는 만큼 샀다. 자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신이 난단다. 아이들은 비닐 씌우고 모종 심어서 물주고 흙을 덮는 것까지 척척 해낸다. 둘째 아들은 코로나 시기에 돈 벌 걱정말고 농사지으면 되겠다며 농사일에 적극적이었다. 아들의 열정은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농사에서 희망을 보았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등을 보고 자랐던 나이기에 아이들과도 농사를 짓고 싶었었다. 상추 하나라도 내가 직접 키워서 먹을 때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도 알고 노동의 가치도 알게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노동을 함부로 하지 못해야 겸손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니 농사는 자식 농사로 최고다. 스스로 일해서 먹는 어려움을 알아야 공부할 때도 이유가 생기고, 더 잘 할 수 있으니 공부 농사로도 최고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고 이웃과 더불어 하는 것이니 공동체 농사로도 최고다. 코로나 시절에 밖이지만 눈치 보지 않고 몸 쓰면서 얻어가는 것이 있으니 마음 농사로도 최고다.
아직 몸은 게으르고 배움은 더디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농사를 짓고 있다. 아직 땅이 없어 소작농으로 작은 텃밭을 가꾸지만 즐거움은 작지 않다. 농사가 신통치 않아 나눌 채소는 적지만 나눌 이야기는 많으니 밭으로 나서는 순간순간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