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의 봄

글• 사진 김도숙

 

봄은 색채의 마술사다. 세상의 고운 빛을 모두 한 데 모아 빚어 놓은 4월에 내가 찾게 되는 곳은 삼천포 와룡마을 골짜기 청룡사다. 해마다 벚꽃이 질 무렵인 4월 중순 쯤, 짙은 분홍의 겹벚꽃이 새롭게 피어나 벚꽃 진 아쉬움을 달래 주는 예쁜 곳이기도 하다.

청룡사 초입부터 진분홍 겹벚꽃과 어우러진 연두빛 꽃길이 비밀의 정원에라도 들어 가는 듯 가히 환상적이다. 청룡사 경내로 오르는 돌층계 아래에 서서 위를 올려다 보면 하늘과 벗 삼은 겹벚꽃잎이 종각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청룡사에 대한 기억은 10대 즈음이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께서 다니셨던 청룡사에서 누군가의 49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던지 아니면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던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외할머니께서 나를 데리고 가셨던 것은 분명하다. 승용차가 귀하던 시절이라 택시를 대절해서 시내에서 용두마을을 거쳐 꼬불꼬불 비좁은 비포장길을 한참을 올라가서야 다다른 곳이었다.

깊은 골짜기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던 절집. 그곳은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이었다. 그 때까지 비구니 스님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까닭에 비구니 스님들에 대한 인상은 특별하였다. 저토록 젊은 나이에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왜 세속의 많은 것을 버리고 입산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신심 깊은 불교도였다. 늘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자손들이 잘 되고, 당신도 자는 잠에 가기를 염원하곤 하셨다. 외할머니는 아들 셋을 어릴 때 여의고, 삼천포에 사는 우리 어머니인 큰딸에 의지하며 외가에서 홀로 사셨다.

외손녀인 내가 첫 발령지인 하동 화개에서 고향 삼천포로 근무지를 옮겨 왔을 때, 그런저런 까닭으로 외가에서 외할머니와 5년여 지내게 되었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불심 가득한 마음을 지켜보았다.

외할머니는 한때 고성군 하이면 운흥사 말사인 천진암에 다니셨다. 그곳에서 수행하시던 비구니 스님이 청룡사로 옮겨 외할머니도 이곳 청룡사로 절을 옮기셨다.

초하루며, 보름이며, 불교의 기념일마다 교통도 불편했던 깊은 산사까지 열심히 다니셨던 외할머니는 큰 깨달음보다는 다만 가족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셨다.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청룡사 경내는 아담하고 정갈하다. 와룡산 봉우리들이 연꽃처럼 절집을 감싸고 있어 참 포근하기도 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하는 소담스런 연등들이 환하다. 경내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무 아래 간절한 축원을 담은 기왓장들도 눈에 띈다. 절집 곳곳마다 비구니 스님들의 정성 담은 손길이 느껴진다.

한 곳에는 차담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추사 김정희의 글귀도 눈에 들어 온다.

 

청룡사는 50여 년 전, 장룡 노스님께서 와룡사의 산내 암자 진불암의 옛터로 전해진 이곳에 청룡사를 창건하시고, 겹벚꽃을 심으신 지 40년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승용차가 흔한 요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사천에서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내방객들이 모여드는 지역 명소가 되었고, 최근 ‘사천 9경’으로도 선정되었다

청룡사에 오면 저잣거리의 번거로운 마음이 가라앉는다. 법당 안에 앉아 고요히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본성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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