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잇다 풍경을 담다 : 잇담
용궁이 우려내는 얼큰한 노을 한그릇 – 해물탕
맛의 앙큼한 반란을 찾아서
초여름 장대비가 골목으로 쏟아든다. 모임가는 사람들처럼 총총걸음이다. 비도 가고 싶은 곳이 있어
모임 때 더 자주 오는것 같다. 사람들도 비 올때 더 모이고 싶어진다. 비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이
대세지만 조금만 역발상을 해 본다면 주안상 메뉴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는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이 산재하므로 인주빨의 극치를 맛볼 수 있어 맛의 앙큼한 반란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찬하다.
생물 본연의 맛 즐기는 뱃사람들
해물탕은 항구 도시의 단골 메뉴다. 왜냐는 설명은 구차하다. 산골에 산채비빔밥이 명물이라면 어촌은
단연코 해물탕이다. 그러나 사천 삼천포는 지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해물탕이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생물을 즐겨먹는 뱃사람들의 습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싱싱한 해물을
날것으로 먹어도 모자랄판에 삶아 먹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다 날것으로
먹는것만은 아니다. 샤브나 숙회 찜 등 다양한 해물요리도 생물 본연의 맛을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삼천포 항구의 해물탕 명맥 잇는 노포
이런저런 연유로 삼천포에는 번듯한 해물탕 거리 하나 없다. 그나마 몇몇 노포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 노포들이 맛집으로 등극해 전국의 미식가들 입맛을 휘어잡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항구에는 해물탕이 맛있어야 한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이들 노포는 삼천포 용궁수산시장을
중심으로 옛 간선도로변을 따라 대 여섯 군데 성업 중이다. 하나같이 맛의 고수를 자처한다. 싱싱한
삼천포 용궁수산시장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한려수도 바다가 모여 앉은 용궁 한 그릇
빗줄기 시원하게 퍼붓는 저녁. 얼큰하고 짭조름한 해물탕을 찾아 들어간다. 고단한 속 채우기도 좋고
그리운 사람과 정 나누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무엇보다 알싸한 곡주 한 잔에 쫀득한 해물과 매콤한
국물의 유혹은 쉬이 뿌리치지 못한다. 푸짐한 양푼이에 용궁이 들어 앉아 있다. 바지락,홍합,소라,
가리비 등 다양한 조개를 위시해 새우,게,전복까지 귀한 몸 보시하고 미더덕과 콩나물, 갖은 야채,
당면까지 호화롭게 병풍을 두른다.
뭐니뭐니해도 삼천포항구 해물탕이 제격
보글보글 열기가 오를 즈음 용궁 악단장 낙지의 현란한 지휘로 한바탕 맛의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싱싱한 갯가 향기 기적처럼 뿜어나오고 밑반찬들도 정갈하게 모여든다. 이윽고 숨죽인듯 경청하던
술잔들 일제히 융기하고 해물탕은 그제서야 장막을 걷고 본색을 드러낸다. 주인장의 능숙한 가위질에
산산조각 용궁 명품들이 진열되고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손놀림. 쫀득한 조갯살이 감탄을 토해낸다.
꽃게살이 우려낸 시원한 국물에 콩나물 곁들이고 야들야들한 낙지 한점 휘감아 삼키니 입안 가득
맛 든 파도가 휘몰아친다. 한 잔 두 잔 반주가 흥겹고 후루룩 후루룩 국물 들이키는 소리에
얼큰한 미소가 식당가득 퍼진다. 썰물처럼 마실나간 빈 그릇속으로 다시 든든한 하루가 채워진다.
뭐니뭐니해도 항구는 해물탕이 제격이다. 어느새 노을이 얼큰하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