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잇다 풍경을 담다 : 잇담
엄마 손 맛 추억 한 그릇 – 해물칼국수
사시사철 희로애락 전천후 음식
음식과 날씨는 연인사이다. 쾌청하게 맑은 날에는 쫄깃한 회가 당기고 장대비 쏟아질때는
삼겹살이 제격이다. 그런가하면 감정의 기복에도 음식은 관여한다. 우중충하고 찌뿌등한 날
에는 매콤한 해물찜이 생각나고 허기지고 기력이 쇠하면 보양식이 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사시사철 희로애락과 상관없이 끌리는 음식이 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이열치열 개운하게
먹고 추우면 추위를 녹이는 따스한 국물로 먹고 이도저도 아닌 밍밍한 날에는 칼칼하고 얼큰함
으로 텁텁한 입맛을 떨쳐내는 음식, 바로 칼국수다. 그것은 아마도 엄마 손 맛이 깃든 향수의
모태이거나 서민 음식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결합된 당연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고리타분한 통념쯤은 잊어도 좋은만큼 귀하고 고급진 음식이 되었다.
손과 칼이 빚어낸 걸작품
음식 중에서도 손과 칼이 빚어낸 찰떡 궁합이 칼국수다. 주재료인 반죽을 찰지게 치대고
고르게 썰어내는 일이야말로 칼국수의 맛과 멋을 좌우하는 결정타가 아닌가. 그러기에 손과
칼이 기억하는 맛이 온전히 베인 음식이 칼국수다. 거기에 부재료인 국물 맛 또한 무시 할 수
없는 일등공신이다. 진하면서도 개운한 육수가 아니고서는 칼국수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없다.
멸치와 다시마가 우려낸 육수에 애호박과 감자가 명품 조연을 자처하고 바지락이나 홍합 등
신선한 해산물이 특별 출연하면 칼국수는 최고 작품상에 손색이 없다. 달작지근하고 매콤한
양념간장은 칼국수의 화룡점정이다. 잘익은 깍두기나 열무김치가 곁들여지면 수라상 음식
부럽지 않다.
삼천포 중앙시장 골목마다 맛집 노포 즐비
삼천포 중앙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손 맛 칼 맛 녹아든 명품 해물칼국수를 어렵잖게 만날수
있다. 여느 집에 들어가도 실망하지 않는다. 이는 사천의 전통시장은 물론 수산시장 골목집
노포도 예외는 아니다. 국수 삶는 휘뿌연 김이 골목을 잠식한다. 찰진 반죽을 고들고들하게
썰어낸 국숫가락들이 가마솥에서 맛을 예고한다. 구수한 육수 냄새가 먹기전도 입맛을 낚아버린다
손님들의 젓가락이 들썩거린다. 벌써 막걸리 한잔 나눈다. 곰삭은 김치가 구수하게 입맛을
다그친다. 어르신들은 물론 장보러 나온 새댁들과 중년 엄마들로 좁은 가게는 문전성시다.
뚜껑 열린 가마솥이 뿌옇게 장막을 친다. 무대가 순식간에 안개속에 갇히고 주인 아주머니의
분주한 손놀림이 베일속에서 아른거리더니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해물칼국수가 얼굴을 내민다.
오장육부 시원하게 요동치는 감칠맛나는 파장
그릇이 양푼이만하다. 뽀얗게 열기를 품은 면발이 투명한 갈색 육수속에서 요염하게 유영한다.
파란 애호박이 청일점처럼 제 빛을 발하고 입 벌린 바지락과 홍합의 속살이 금시라도 살아날듯
탱탱하다. 새우는 막바지 진액을 헌사하고 연분홍 줄무늬로 유혹한다. 간장과 실파로 맛을 낸
양념 두어번 살짝 뿌려 휘저은 뒤 한젓가락 푹 집어 넣는다. 찬 기운 품고 후루룩후루룩 빨려
들어가는 면발의 쫄깃함이 고무줄처럼 탱탱하다. 씹는맛이 황홀하다. 잽싸게 김치 한 점 곁들인다.
농익은 젓갈의 풍미가 풍년이다. 맛은 타이밍. 때를 놓칠세라 국물 한 모금 들이킨다. 마지막
면발 따라 개운한 국물이 막차타고 달려간다. 입안과 식도와 위까지 뜨끈하고도 감칠맛나는
파장이 시운하게 요동친다. 감탄사를 토해내며 온 몸이 행복한 미소로 감전된다.
삼천포 해물이 우려낸 오감만족 행복 먹기리
음식은 영양도 중요하지만 맛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언제 먹느냐에 따라 맛과 질이 달라진다.
비주얼도 도외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무엇보다 먹는이의 만족감이 최고가 아닐까. 그
음식을 먹었을 때 좋은 추억이 쌓이고 몸의 오감이 위로 받는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음식이다.
칼국수 한 그릇에 개운한 하루가 보장된다면 먹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시사철 남녀노소
다 좋아하는 칼국수가 그래서 사랑받는 이유다. 싱싱한 해물이 즐비한 사천 삼천포항에는
좁은 골목마다 노포들이 끊임없이 칼국수를 삶아내고 있다. 살아 있는 육수의 산실이기에
칼국수 맛도 진하고 깊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리운 고향 어머니 손 맛
비 온다고 한 그릇, 추워서 한 그릇, 너무 더워 입맛없다고 또 한 그릇. 손이 기억하는 모든
맛이 녹아있는 칼국수를 먹으며 문득 홍두깨 밀어 손수 썰어 칼국수 끓여주시던 어머니가 그립다.
그 칼국수가 먹고싶다. 아 참! 연탄불에 구워먹던 자투리 반죽의 고소하고도 바삭한 소리까지
생생하게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