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작농 일기 2 – 나눔의 하모니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농사 지식은 미약하지만 꿈은 창대하였다. 텃밭쯤이야 나 정도면 잘 할 거고, 좀 모자라도 결과는 좋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모종 하나 심으면서 먹고 살 걱정을 했다. 내가 농사를 잘 지어서 너무 많은 작물이 나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열리지도 않은 열매 대신 나눠 먹을 사람들 얼굴이 주렁주렁 열렸다. 누구 하나 아쉬워하지 않게 어떻게 나눌 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처음 아이들과 사서 심은 모종이 싸그리 몽땅 말라 죽기 전까지 말이다. 물을 제 때 주지 않아서였다. 어린 모종을 키우기 위해선 물을 제때 잘 챙겨주고 흙도 잘 덮어주고 틈틈이 봐 줘야만 했는데, 오만했다. 아이들에겐 말하지 않고 처음보다 2배의 모종을 사다 심었다. 수확물의 종류보단 잘 죽지 않는 것으로 골라서 심었다. 꽈리고추 한도랑 토마토 한도랑.

‘식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친구의 말처럼 수시로 찾아갔다. 마르지 않게 물을 주고, 잔가지가 올라오면 솎아주고, 키가 자라면 지지대를 꽂아 묶어 주었다. 선선한 봄바람이 지나고 무거운 여름 햇볕이 내리쬐자 열매들이 익어갔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때가 왔다. 꽈리고추를 열심히 나누기 시작했다. 약 한번 하지 않고 키운 첫 작물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첫 농작물이라 나누는 즐거움이 있었다. 받으시는 분들도 수고했다고 기쁘게 받아주셨는데 문제는 꽈리고추를 해 먹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된장에 찍어 먹어도 되는 오이고추처럼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멸치와 함께 볶아 먹거나 밀가루에 묻혀 찐 후 간장에 찍어 먹는 꽈리고추는 손이 많이 가서 인기가 없었다. 붉게 익혀 고춧가루를 만드는 고추도 아니니 한철 바짝 해먹어야 되는데 양이 너무 많았다. 나도 농사는 지었지만, 요리는 즐기지 않아서 두 번 먹은 게 최선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나눠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이 많아 고민이었는데 다행히 친구가 맛있게 요리를 해서 나눔을 해서 일단락이 되었지만, 그 이후로는 꽈리고추는 심지 않기로 했다.

 

나눔의 하모니카를 불어라

작년의 배움을 바탕으로 올해는 사람들이 좋아할 것들을 심기로 했다. 마침 새로 얻은 텃밭 주인께서 초당옥수수 모종을 주셨다. 초당옥수수는 달짝지근하면서 아삭아삭한 식감으로 인기가 좋았다. 우리 가족도 한 번 사서 먹어봤는데 토종옥수수가 입에 익숙하여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러나 남들이 맛이 있다 하였으니 그들을 위해 키워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이것은 나눔 99퍼센트다. 성공을 꿈꾸며 밭을 일구고 모종을 심고 틈틈이 거름도 주고 가지도 솎아 주었다. 짧은 장마지만 많은 비를 맞고 쓰러진 옥수수를 세우려니 어느새 알이 가득 찼다. 도로가에서는 삶은 옥수수를 팔고 있고, 입맛이 없어지는 틈에 챙겨 먹기 좋은 옥수수를 나눌 때다. 장마가 끝나고 나서 폭염이 시작되었다더니, 이른 오전임에도 땀이 빗물처럼 쏟아졌다. 옥수수대는 뽑아 정리하고 열매를 땄다. 옥수수 껍질은 집에서 벗기면 쓰레기가 될 듯하여 미리 벗겨서 노란 속살이 보이게 했다. 미리 까두면 말라버릴까 싶어 서둘러 배달을 간다.

단체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한두 번 먹을 수 있는 양을 나누었다. 이번에는 수확량이 많지 않아 마음껏 나눌 수가 없었다. 적은 양이지만 수고로움을 먼저 알아주셨다. “직접 농사를 지었다고? 이렇게 귀한 걸 줘서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중에는 역시나 초당옥수수를 즐기지 않으신 분도 계셨는데 늦은 밤 문자를 주셨다. ‘아는 사람이 키워선지 맛이 좋다고, 이젠 초당옥수수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주셨다.

그리 즐기지 않던 가족들도 맛있게 먹어 준다. 내 입에도 달달하고, 누군가에게도 달달했을 초당옥수수로 나눔의 하모니카를 불었다.

 

소작농 일기 1- 코로나블루에 농사, 나, 그린(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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