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공원> 다시 보기
글・사진 조영아
전에는 산성공원이라 불렀다. 수양산에 ‘산’, 사천읍성에 ‘성’을 붙인 게 아닐까. 아직도 그 이름이 내게는 더 익숙하지만, 오늘은 현재 공식적인 명칭인 ‘수양공원’이라 부른다. 공원 근처 사천초등학교 후문에서 오랫동안 영어학원을 운영했었다. 10여 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학원이 한가한 오전 시간에 수양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그러다가 집을 사천향교 앞으로 옮기고 나서부터는 우리 가족 모두 매일 수양공원을 가로질러 다녔다. 이제 곧 서른이 되는 큰아이가 초등학교 같은 반 남사친으로부터 처음으로 사랑의 쪽지를 받은 곳도 이 공원 어딘가이다.
요즘엔 뜸하게 온다. 올 때마다 매번 정말 좋구나, 자주 와야지, 다짐하지만 그게 그리 어렵다. 바쁜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운 주말 아침, 원두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공원을 향했다. 폭염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다녀와야지. 공원까지는 걸어서 3분. 안개 낀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변한 것들과 변하지 않은 것들
#1. 동문길로 오른다. 주차장 한 켠에 ‘수양공원 놀이터 조성공사’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고, 주차공간 일부를 막아 놓았다. 공사는 한 달 전 상황 그대로다. 아마도 장마 때문이지 싶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친환경 유아 놀이기구들이 놓여있는 ‘유아숲체험원’이 나온다. 딱 보기에도 매우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는 목재 구조물! 아이는 없고 길냥이 한 마리 빈집을 지키고 있다.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과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상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2. 최근에 공원 서쪽으로 뻗어있는 성벽을 새로 쌓았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도 깔끔하게 정비했다. 동서로 이어지는 인도 가장자리와 성벽 아래 설치한 네온등은 공원의 밤을 한결 안전하고 감성적으로 바꾸었다. 덕분에 저녁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작년 여름, 나도 아이들과 몇 번 왔었다.
#3. 남문(정문) 초입에 있는 약수터는 그대로인데, 약수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온 순서대로 통을 줄 세워 놓고 덩굴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열심히 피웠었는데……. 요즘엔 사람들이 약수를 안 마시나? 이용 흔적이 없는 걸 보니 아마도 그런가 보다. 그 아래 게이트볼장도 텅 비어 있다. 전에는 제법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더워서 잠시 쉬는 걸까, 아니면 요즘 핫한 파크 골프장으로 옮겨가신 걸까?




#4.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 생기고, 사라지고, 변한 것들도 있지만, 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들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한 것들이 있어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반가움이 더 큰 것은 아닐까. 수양공원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중에 제일은 수령을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고목들이다! 추측건대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아마 이 모습 그대로였을 것이다. 위엄있고 당당하고 빼어난 자태 감상은 보너스이고, 광활하게 뻗친 나뭇가지들이 선사하는 차원이 다른 그늘의 시원함은 와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수양공원 특급 서비스다!
#5. 수양루도, 팔각정도, 그대로다. 연못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연못에 잉어 대신 수련이 들어와 있는 것만 제외하면. 비교적 근래이기는 하나 고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의 재현을 염원하며 만든 석제단도 무성하게 자란 풀숲 가운데 말없이 서 있다. 이끼 낀 성벽의 예스러운 멋은 공원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준다.
#6. 인근 어르신들 무더위 쉼터로 이용되는 관덕정도 그대로다. 한 달에 25일쯤 관덕정에 오신다는 어르신을 만났다. 선풍기를 내 쪽으로 돌리시며 쉬어가라신다. 사람이 그리우신 게지. 짧은 이야기에서 어르신의 인생이 얼핏 보인다.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삶, 허투루 대해도 되는 인생이 없다. 겸허를 배우는 아침이다. 어르신과 인사하고 내려오는데, 어느 집 담벼락 너머로 드리워진 포도에 시선이 머문다. 한 알 깨물면 실 것 같지만 주렁주렁 달린 풍경이 정겹다.






#7. 마지막 코스는 공원 서쪽 끝에 있는 약 600년 수령의 보호수 느티나무다. 안내판에 ‘옛날 향시를 마친 선비들이 나무 밑에서 과제에 대한 토론을 가졌고, 현감이 타지에서 온 손님을 나무 아래에 모시고 사천 전경을 보면서 설명하였다.’고 적혀있다.

해가 질 무렵 이곳에서 사천 읍내를 내려다보면 적잖이 감성적이 된다. 머리가 복잡할 때 멍때리기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수백 년 전 이곳에서 내려다본 사천 전경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하다.
저만치 보호수를 앞두고 나무 아래 두 사람에게 시선이 머문다. 그들의 진지한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멀리서 사진만 찍고 살며시 돌아 나왔다. 부녀지간인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 아버지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 이제는 그럴 기회조차 가질 수 없기에 오늘 같은 날이면 잠시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좀 걸었더니, 아직 아침인데도 더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오늘도 역대 최악의 폭염 소식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떠들썩하겠지. 저녁나절, 하루 종일 켜 놓은 에어컨을 잠시 끄고 근처 공원을 산책해 보는 건 어떨까?
[수양공원 방문일 : 2023년 7월 29일]
※ 개인적인 지식과 생각에 의존하여 작성된 글이라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