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이야기”

‘누나야~ 엄마가 돌아가셨어.‘

그날은 어찌나 바람이 차갑게 불던지…

49재 중 첫 재를 모시면서 함께 한 님들께 그저 고마움과 미안함이 가득했었다.

그때의 가득했던 고마움과 미안함은 49재가 끝날 즈음, 그리움이라는 낯설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나의 선택이 아닌 듯 느낄 수 없는 공간 속으로 무심히 스며드는 나 아닌 그녀.

 

그녀는 백일 된 남자아이를 양손으로 조심스레 받쳐 들고 엄마랑 맑고 얕은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징검다리가 끝나면 49재를 위해 엄마를 모신 절 주지스님께서 백일잔치를 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것도 모른 채 그녀 품에서 곤히 잠든 그 아이는 평온하고 고요할 뿐이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요새 모양의 공간에 파란 하늘이 보이는 구멍이 나 있다. 그 아이를 품고서 바다에 빠지듯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넓은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축하를 받으러. . .

. . . 선명하게 꿈으로 다가왔다.

늘 아들이 먼저인 장 씨 집안에서, 아들 1명을 더 낳아야 장손 며느리의 자격을 부여받는 듯. 둘째 딸도 셋째 딸도 장손 며느리에겐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3명의 딸을 가지면서 엄마 스스로 갖는 죄책감은 어느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막내인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진.

그랬다. 엄마는 남동생의 존재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듯이 행복하셨다고.

행복은 잠시, 엄마의 근심과 또 다른 죄책감은 더 이상 딸을 원치 않았던 셋째 딸에게 갔다. 5남매 중 가장 허약하게 태어나 모유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병원생활과 몸에 좋은 약들은 늘 달고 살았고 일상생활에도 제약이 컸다. 딸의 존재를 부정한 미안함에서 오는 돌봄이 왜곡된 보호처럼 ‘약한 네가 뭘 한다고… 할 수 있겠나… 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 다친다…’ 등 무수한 부정적 말들 속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받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과 상대를 탓하며 서운함으로 끝나버렸다. 이런 생활의 반복 속에 딸로 태어난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고 비난하며 더 많은 상처와 아픔까지 보태고 있었다. 이런 삶이 나의 성장에 걸림돌이고 건강한 관계를 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손을 놓지 않고 심리 공부를 해 왔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또 반이 흘러가고 있다.

엄마는 이런 사실을 아시는 듯 못다 한 이야기를 49재 기간에 꿈으로 주신 것 같다. 엄마의 죽음과 정서적 나의 탄생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태어나 백일잔치 축하를 받는 나의 남성성 아니무스. 나는 이렇게 중심을 잡고 말할 수 있다.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고, 충분히 괜찮다고 저 깊숙한 곳에서도 들을 수 있게.

‘우리 셋째 딸, 너라서 참 좋아. 고맙고 그리고 미안해, 사랑한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 포근한 엄마의 숨결과 나는 함께 한다. 백일잔치 축하를 함께 받으며. 그리고 가슴에 담는다.

“엄마 그곳도 편안하죠. 사랑합니다.”

아침부터 가랑비인 듯 아닌 듯 내 몸에 스며들더니 지금은 빗줄기가 제법 굵다. 비 오는 날을 유난히 좋아하는 난. 오늘 내리는 이 비가 더없이 예쁘고 고운 이유를 알고 있다. 미소를 지으며 커피 잔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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