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공존하며 성장하고 싶다

너를 처음 만난 게 2019년 2월인 것 같다. 멋도 모르고 여기 들어온 그 해. 너는 사무실 한쪽에 있던 ‘호야’라는 식물이었고 네가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는 걸 안 것은 한 참 뒤다.

늦게 한 결혼의 달콤함을 누릴 새도 없이 아이들이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남편은 매일이 바빴고, 아직 어린 아이들과 갑자기 쓰러지신 시어머니는 나 말고는 돌볼 사람이 없었다. 오랜 병수발에 열 효자 없다고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지치고 고단한 시간이었다. 결국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그러고 나선 죄책감으로 인해 매일 매일이 벌서는 기분이었다.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나만 바라보고 있는 그 까만 눈망울을 어떻게 외면하겠니.

시어머니 계실 때는 종일 긴장하고 온 신경이 당신 계신 방으로 곤두서 있었다. 갑자기 그 긴장의 끈이 탁 끊어지고 나니 한없이 늘어지고 나태해졌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직장에 다녀 볼 것을 권유했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찾은 직장이었다. 힘들면 쉬어야지 왜 직장을 가지려고 하냐며 주변에서 말렸지만 차라리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살 길이라 생각했다.

10년 넘게 집에만 있던 사람이 갑자기 직장이란 걸 가지고 출근을 하게 되니 집안은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그리고 덜컥 얻은 직장이 하필이면 이런 저런 골치 아픈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평소 관심은 있었지만 관련 지식이 별로 없었던지라 매일 매일이 고역이었고 힘듦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가 보였다.

호야

너는 사무실 귀퉁이 어딘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크지 않지만 작지도 않은 화분에 살고 있던 너의 존재를 알아차린 후부터 자꾸 신경이 갔다. 그때의 너는 바싹 마른 몸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 같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에 뭐라도 줘야 할 것 같아 물을 한잔 건넸다. 온 몸으로 물을 받아 마신 너는 다시 무심한 모습으로 나를 외면했다.

그래. 미안하다. 한 공간에 엄연히 살고 있는 너의 존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가야할 곳은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은데 일하는 사람은 나 혼자니 씩씩거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미친 듯이 돌아 다녔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너는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때마다 너에게 물을 건넸고 너는 매번 무심히 그 물을 온 몸으로 흠뻑 받아 마셨다.

언제부터인가 너의 몸에 생기가 돌면서부터 내 몸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이란 것이 그렇잖아.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끝은 있게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 것들도 더러 있지.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적응하고 천천히 일을 익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가 메마르고 외롭던 시간을 견디고 타인이 건넨 선의를 조금씩 받아 마시며 몸의 기운을 끌어올렸듯이, 나도 고단한 시기를 버티기 위해 누군가 건넨 에너지를 받아 마시며 스스로를 단련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나의 무관심속에서도 네가 새로운 가지를 힘차게 뻗어 내는 걸 보고 큰 힘을 얻었다. 너는 더 이상 그전의 메마른 아이가 아니다. 네 속에 무한히 차 있는 푸름을 뻗어 낼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다. 반면 나는 아직도 불안정하다. 여전히 일은 많은데 모르는 것이 더 많고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여기 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크게 돈벌이는 못하더라도 미약하나마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일을 택했고 그 다짐을 자양분삼아 버티고 있다.

‘호야’ 너란 놈은 꽃을 피우게 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역시 오십이 다 되어서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를 보면서 용기를 얻었고 힘들지만 끝까지 해보고 싶다. 설령 네가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래도 너는 ‘호야’이고, 또 나는 나다. 죽지 않는 한 성장할 수 있지 않겠니.

그냥 나는 이 공간에서 무심히 너와 공존하며 천천히 뻗어 갈 생각이다.

2021. 10. 15. 김미애
사천남해하동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고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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