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인연

언제부턴가 나에게도 작업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가끔 그려보는 나만의 놀이터.

2015년 봄과 여름의 중간 즈음에 나만의 공간을 만났다.

일주일 두 번 문화 센터로 출근했던 나는, 가는 길목에 보이는 작고 아담한 가게를 눈여겨보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몇 년이 흘러 그곳은 새 주인을 찾았고 나는 망설임 없이 계약을 하였다. 도서관이 옆에 있고 파출소가 앞에 있어서 새벽까지 문을 열어 두어도 안전히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겨울에도 햇볕이 따뜻해 몸이 늘어지는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옆 가게 사장님이 길고양이 밥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곳도 업종과 주인이 바뀌었다.

고양이들은 한참을 전 주인을 기다리다 돌아갔다. 녀석들에겐 허기진 배를 채우고, 따뜻하게 쉬었을 공간이었을 텐데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고양이들이 가여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문을 열고 작업을 하는 날이면 녀석들은 공방 안으로 들어와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본다. 동글동글 참 예쁜 녀석들이다.

삼색이, 흰 순이, 미남이, 심바,… 이름도 붙여 주었다. 녀석들은 생김새도 달랐지만, 성격도 저마다 달랐다. 순하고 예쁜 삼색이, 새끼들도 잘 보살피고 뚝심 있어 보이는 흰 순이, 붙임성 좋고 잘생겨서 미남이, 여기저기 잘 다쳐서 오는 심바, 긴 기간 밥을 먹고도 경계하는 노랑이

처음 밥을 주기 시작하였을 때는 마음 아리는 날이 있을 줄 몰랐다.

수놈들은 영역 다툼에서 밀린 건지, 사고를 당한 건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여기저기 상처가 나서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게 잊혀지기도 한다.

잡히질 않으니 치료를 해줄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그릇에 사료와 물을 비워지지 않게 채워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그릇에는 나의 마음도 함께 담아 둔다. 이 녀석들을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은 마냥 편안해진다. 예뻐서 미소도 절로 지어진다. 고양이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아슬함에 살아가지만 나는 이렇게 위로를 받는다.

옆에서 보기엔 일방적인 나눔 같지만 절대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녀석들을 만나면서 배워가는 부분도 많다.

고양이들이 출산하고 젖 먹일 때를 보면 너무 말라 마음이 아프다.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데리고 와서 사료를 먹이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고양이들은 입에 사료를 물고 가기도 한다. 하루는 사료를 담은 비닐을 그릇에 두었는데, 세상에 그걸 물고 가면서 반 이상을 길에 흘리며 간다. 새끼들을 먹이기 위한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저 녀석이 나보다 더 어른이구나. 내가 너에게 배워 가는구나.

두 아이를 모유 수유를 하며 키웠던 나는 허기짐을 자주 느꼈다. 아이들이 밥을 먹기 시작하고도 그 허기짐은 꽤 오래가고 힘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배가 고파 식당을 찾을 때면 아이들보다는 내 배 채우기 바빴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고 든든해지면 그제야 아이들을 챙겼다. 사료를 물고 가는 녀석을 보는데 그런 내 모습이 스친다. 그렇게 고양이의 모성애는 나를 감동하게 하고 나를 성장시켰다.

사람들은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뜯어 놓는 주범이라며 눈살을 찌푸린다. 발정기가 되어 아이 울음소리를 낸다 하여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주변 분들이 사료를 챙겨 주는 곳은 뜯어진 쓰레기봉투가 잘 보이질 않는다.

먹을 것이 있으니 뜯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루빨리 사천에도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와 길고양이 티엔알(TNR) 사업 등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존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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