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새벽 일찍이 일어나 와룡산을 등반하였다.
숨이 차서, 더워서, 귀찮아서…. 싫어하는 이유도 가지가지였던 내가 산을 찾게 되었다.
6월 말이면 낮엔 제법 더운 날씨지만 새벽부터 움직여서인지 아침 8시 넘어 정상 민재봉에 도착하였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가팔라지는 길에 식었던 땀이 다시 났지만 금방 서늘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아래 동네에서보다 진한 색감을 뽐내는 나리꽃. 길옆에 핀 노루오줌과 산수국은 멀리서 봐도 예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더 곱고 예뻤다. 내내 만나는 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눈 맞춤 하느라 바쁜 산행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3~4번의 와룡산을 더 올랐다. 다른 코스로 오르면서 와룡산 곳곳을 알아갈 수 있었다.
주말이 다가오면 산 오를 생각에 설렘은 기본이고 생활이 생기 있고 즐거워졌다. 와룡산을 시작으로 좌이산, 각 산, 신불산, 봉명산, 설흘산, 황매산, 조계산, 지리산, 영취산…. 제법 많은 산을 올랐다. 이렇게 오르다 보니 물러빠진 내 몸이 조금씩 야물어 가는 느낌이었다.
산을 걸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포가 강열하게 움직이는 듯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맑아지고 즐거웠다.
올 초, 너무 무리한 탓일까? 무릎이 삐거덕 대기 시작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겪는 무릎 통증으로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도무지 산행이 힘이 들었다.
요즘은 뒷산을 가끔 오른다. 다리에 무리 되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뒷산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뒷산을 오르지 못하는 날은 집주변을 걷는다. 아파트 주변이 논과 밭이라 차가 다니지 않고 공기까지 맑으니 우리 집 개님들과 함께하기 딱 좋은 코스이다.
논 옆으로 예쁜 주택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집 담벼락으로 빨간 장미가 5월을 알리느라 멀리서도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오늘은 여유 있게 장미 가까이에 내 코를 대본다. 진한 장미향이 내 코와 머릿속, 마음마저 꽃잎을 따다가 넣어주는 듯하다. 내게 먼저 달려온 개님부터 장미에다 코를 대어준다. 후각에 민감한 녀석들이라 코를 킁킁대는데 꽃내음이 강아지들에게도 행복으로 전해졌을지는 모르겠다.
모두들 봄이 짧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올해 봄처럼 긴 봄이 없었다.
곳곳의 산을 오르며, 들을 걸으며 만나는 꽃과 나무들 그리고 산새들올 봄처럼 많이 만난 적이 또 있을까?
나의 이번 봄은 꼭 1년의 반을 함께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