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린 시절 노산공원의 계단은 까마득해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렸다. 계단 양옆으로는 아카시아나무와 여러 잡목들이 우거진 그늘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오랜만에 찾은 노산공원의 추억들이 스물 스물 피어난다.
옛 시간들을 추억하며 길을 따라 걸어본다.
공원 끝 정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참 편안하다.
해녀들의 물질로 해산물을 따다 팔던 바닷가는 왁자지껄 했던 소리만 배여 있을 뿐 물고기상과 삼천포 아가씨가 앉아 있다.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이제 가면 오실 날짜 일년이요 이년이요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내 고향으로
조개껍질 옹기종기 포개놓은 백사장에
소꿉장난 하던 시절 잊었나 님이시여
이 배 타면 부산 마산 어디든지 가련 만은
기다려요 네~ 기다려요 네~ 삼천포 아가씨는
꽃 한 송이 꺾어들고 선창가에 나와 서서
님을 싣고 떠난 배를 날마다 기다려요
그 배만은 오건마는 님은 영영 안 오시나
울고 가요 네~ 울고 가요. 네~ 삼천포 아가씨는”
(반야월 작사, 송운선 작곡)
아직도 슬퍼하고 있는 노래 속 주인공 옆에 앉아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를 듣는다.
은방울자매 목소리의 비 내리는 삼천포 항구는 만남 보다 이별이 깊이 각인되어 있고 ‘삼천포 아가씨’ 노래는 어떤 슬픔보다 더 슬프게 들린다.
Bevinda – Ja Esta(이젠 됐어요)
어느 햇빛 쏟아지던 날 당신은 내 곁을 떠났죠.
텅 빈 침대를 남겨 두고 매정하게 그렇게 떠났죠.
많은 날들을 눈물로 지새웠지만 이젠 됐어요.
더 이상은 당신 때문에 아파하고 싶지 않아요.
단 하루도 당신 때문에 고통 받고 싶지도 않아요.
당신은 이제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났듯이 우리의 사랑도 내 곁을 떠난 거죠.
중략~
난 지금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어제 온 편지조차도 읽고 싶지 않아요.
열어보지도 않은 편지
당신을 추억하지 않고 하루를 더 보낼 수 있게
어둠이 나를 찾아 밀려와요.
우리 사랑도 당신이 떠나던 날 끝났어요.
포르투갈 출신의 파두 가수 베빈다(Bevinda)의 노래 Ja Esta(이젠 됐어요)의 노랫말로 가수 양희은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파두 가사로 리메이크 하여 불렀던 곡이다. 파두(Fado)는 그리움이나 사랑의 실패 때문에 찾아온 향수, 외로움을 표현한 노래로써 포르투갈사람들은 고통과 슬픔을 ‘운명’ 숙명‘ 으로 받아들인다.
이 곡 역시 슬픈 이별을 표현한 애잔한 사랑의 노랫말이다.
떠나기 전에 바라보았던 그 바닷가에서 떠나고 난 뒤 똑같은 자리에서 그 바다를 바라보며 상실감에서 오는 슬픔이 삶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은방울자매가 부른 ‘삼천포 아가씨’와 베빈다의 ‘Ja Esta(이젠 됐어요)’는 많이 닮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한(恨)은 포르투갈 사람들의 한(恨) 사우다드와 많이 닮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느끼는 공허함, 그리움과 슬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우울한 느낌, 희망을 갖고 있을지라도 결국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씁쓸한 느낌이다.
한참동안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한사람의 가슴 아픈 이 실연의 노래가 삼천포를 대표할 만한 노래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불리어져야 할 노래일까?
파두의 노랫말에는 절망을 노래하지만 끝은 삶에의 순종과 용기의 한 자락을 잡을 수 있다.
삼천포 아가씨의 실연도 새로운 용기를 붙잡았을 거라 생각되어지고 아픔은 있었겠지만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세월은 많이 흘러갔고 세상은 너무도 변해 버렸다.
노산공원은 많은 사람들의 고독과 그리움, 사랑과 이별, 아름다운 이야기를 꼭꼭 묻어둔 심연의 장소이며 많은 추억을 보듬어 안고 있는 곳이다.
바닷가를 뒤로 하고 갔던 길을 돌아오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고 계단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