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으로 공연을 보다 –
재담으로 양반을 풍자한 가산 오광대놀이의 고장, 경상남도 사천시
오광대는 경남에 전승되는 가면극을 통칭하는 용어로 통영 오광대(국가 무형문화재 제6호), 고성 오광대(국가 무형문화재 제7호), 진주 오광대(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김해 오광대(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7호) 가산오광대(국가 무형문화재 제73호)가 보존회를 구성하여 전승되고 있다.
가산오광대는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 마을에서 발원되어 전승된 가면극으로서 1960년 무렵까지 전승되어오다가 이후 중단 되었던 것을 동아대학교 강용권박사가 1971년 발굴하여 재연시켰으며, 1974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고 1980년11월17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어느 봄날 가산을 흐르는 남강의 지류에 궤짝이 떠내려 와 열어보니 그 속에 탈과 대본이 들어 있어 그 후부터 오광대놀이를 하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전통적인 가산오광대 놀이는 오방신장무과장, 영노과장, 문둥이과장, 양반과장, 중과장, 할미 영감과장의 6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00여년의 전통을 가진 전국에서 유일하게 오방신장무가 남아 있는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전승되는 탈춤이다.
축동면 가산리는 1760년(조선조 영조36년) 조창이 설치되어 8개 고을의 세곡을 징수하여 이곳에 비축하였다가 조운선(漕運船)으로 서해를 통해 경창(京倉)으로 운송하던 항시(巷市)였으므로 서울과의 왕래가 잦았고 그 당시 300여호의 대취락지를 이루며 큰 시장이 형성되고 타지방과도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던 곳으로 번창된 저잣거리에서 오광대를 비롯한 놀이문화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오광대를 “조창오광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퇴계 이황이 이곳에 왔을 때 사천현감이 퇴계에게 가산오광대를 보여줬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가산오광대탈놀이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가산마을에는 한씨(韓氏)가 정착한지 14대에 이르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증명해주고 있으며,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면 동제(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인 천룡제를 지내고 석장승으로 이동해 석장승제를 지낸다.
동제가 끝나면 풍물패들이 정월대보름전날까지 가가호호 방문하여 지신밟기(메구)를 하고, 정월대보름에는 가산오광대탈놀이, 달집태우기 등 다양한 행사를 했다.현재는 정월대보름에 천룡제를 지내고 석장승으로 이동하여 석장승제를 지내고 지신밟기(메구) 가산오광대탈놀이, 달집태우기 등 놀이를 한다.
오광대놀이는 마을의 동제와 깊은 연관을 지니며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





가산오광대 놀이는 오방신장무과장, 영노과장, 문둥이과장, 양반과장, 중과장, 할미 영감과장의 6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는 파계승에 대한 조롱과 양반 관료층에 대한 비판, 처첩 관계의 폭로를 통한 봉건적 가족제도에 대한 불만 등이다.
가산 오광대의 특징은 다른 지방에는 없는 오방신장무가 있는 점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1과장 오방신장 무과장
중앙황제장군, 동방청제장군, 남방적제장군, 서방백제장군, 동방청제장군, 북방흑제장군이 등장하여 악사들의 풍악에 맞춰 덧배기 춤(경상도 지방의 민속춤)을 추는 무대다. 잡귀를 물리치고 부정을 닦고 복을 빌어 주며 경사를 맞이하는 벽사의식무 이다. 오방신장이란 중앙을 비롯해 동·서·남·북, 이렇게 다섯 방향을 관장하는 신, 혹은 장군을 일컫는 말이다.
제2과장 영노과장 (환상의 동물 ,지역별로 다르다)
영노가 등장하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사방신장들을 차례로 잡아먹고 마지막으로 황제장군과 대치하다 결국 황제장군을 잡아먹는다. 포수가 나타나 영노를 쏘아 죽임으로서 결국 영노도 죽는다. 다른 지역의 사자무 과장 대신 영노과장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영노의 정체에 대해 딱 규정짓기 쉽지 않지만 각 지역 연희에 따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가상 동물로 해석이 되는가 하면 양반 1000명을 잡아먹으면 하늘로 승천하는 일종의 용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제3과장 문둥이과장
장단이 울리면 다섯 문둥이들이 불편한 몸으로 덧배기 춤을 추면서 탈판으로 나온다. 장타령, 동냥거리. 투전놀이 등 놀이판을 펼치다가 어딩이의 신고로 포졸에게 모두 잡혀가는 내용으로 이들 삶의 애환과 비참한 삶을 춤으로 표현한 과장이다.
원래 가산오광대의 문둥이는 절름발이, 입찌그랭이, 곰배팔, 언챙이, 코빠진놈, 이렇게 다섯 명이 등장해야 하나 이날 공연은 문둥이 과장은 없었다.
제4과장 양반과장
큰 양반과 함께 등장하는 네 명의 작은 양반들, 그리고 오광대놀음의 대표적 아이콘, 말뚝이가 등장한다. 하인 말뚝이가 상전인 양반을 모독하고 조롱하며 천민의 반항을 춤으로 풍자한다. 양반들의 허위허식과 무능함을 폭로하고 양반들은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말뚝이춤말뚝이 탈은 유독 다른 탈보다 배나 크고 형태가 특이하다
제5과장 중과장
노장이 양반의 애첩인 서울애기를 꼬여 데려갔다가 되돌려주고 양반에게 응징을 당하는 내용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파계승이 되는 과장이다.
조선시대 말쯤 불교가 많이 부패하면서 산에서 수도에 전념해야 할 중이 속세에 내려와 양반의 첩을 희롱하고 파계승이 된다는 이야기로써, 광대들의 눈에 비친 조선말의 사회상은 유교와 불교의 대립 뿐 만아니라 사회고위층의 위선행위로 가득 찬 모습이 전개 된다. 양반들은 자기 과시를 하고 싶어서 말뚝이를 불러낸다. 그것도 아주 ‘양반스러운(?)’ 포즈를 잡고서. “이놈, 말뚝아~!” 첫 부름에 듣고 쪼르르 달려올 말뚝이가 아니다. 양반들은 돌아가면서 “이놈, 말뚝아~!”를 되풀이한다. 몇 번을 불러서야 말뚝이가 말채를 휘두르며 등장하는데. 양반들은 말뚝이에게 양반의 근본 자랑하려다 오히려 망신만 당하고 ‘옴메 기죽어’ 한다.


말뚝이가 중을 잡아와서 양반 앞에 엎드리게 하고, 양반은 말뚝이에게 중을 매로 치라고 한다. 상좌가 빌면서 매를 막아 주자 양반이 말뚝이에게 어린상좌가 저리 용서를 구하니 다시 절로 돌아가라 한다. 그러나 중은 굴갓을 훌떡 벗어 던지고 목에 걸었던 염주, 목탁, 죽장, 한삼 등 모두 버리며 파계하는 내용을 노래한다.
제6과장 할미∙영감과장
영감이 서울 갔다가 데려온 첩과 할미와의 사이의 애정 삼각관계로 가정이 파탄되는 비극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본처와 첩, 자식 간의 재산분배로 인한 가정 분란으로 조상단지를 깨트린 영감이 죽는다. 옹생원, 박봉사, 대잡이 차례로 등장하며 마지막으로 오무당의 오구굿(죽은 자가 생전에 풀지 못한 원한이나 욕구를 풀어주고 모든 죄업을 씻어주며 천도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끝을 맺는다. 다른 탈놀이에서는 대부분 할미가 죽는데 영감이 죽는 것이 가산오광대 만의 특징이다.
사진 (가산오광대 보존회제공)
파지굿
탈놀음이 끝나고 전 연희자와 관객이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추고 맺는다. 이때 악사는 선두에 서고 전 연희자(演戲者 공연자)가 소고를 들고 덧배기춤을 추며 양반과 서울애기는 원안에 들어가 춤을 추고 악사가 다시 원안에 들어서면 전 연희자와 관객이 함께 바깥을 돌면서 춤을 끝낸다.
가산오광대는 마을의 토속적인 기운을 가지고 놀이가 진행되며 오행설을 근거한 놀이이다. 4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6과장에서 악사와 무당 5명, 대잡이 한명, 서울애기 한명이 여자로 구성되어 있고 거의가 남자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한 춤사위와 현란한 장단에 물들지 않고 선조들이 즐겼던 멋과 흥은 그 시대에 역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탈춤은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13개 종목과 시.도 무형문화재 4개 종목이 지정되어 있다. 13종의 국가무형문화재 탈춤에 가산오광대가(국가 무형문화재 제 73호) 포함되어 사천의 문화유산임이 자랑스럽고 큰 자부심을 느낀다.
202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대상으로 한국의 탈춤을 선정하였고, 대한민국의 탈춤 단체는 세계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서 올해(2022년 10월 9일) 경복궁에서 기원 공연을 했다.
유네스코 등재는 국가적 경사이다. 따라서 우리 고장의 문화 유산인 가산오광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가산오광대 보존회 한남주회장님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대신했던 가면 뒤의 이야기를 통해서 탈을 쓰고 풍자하는 신비로운 놀이의 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사람이 가진 애절함과 소박함, 그리고 꾸밈 없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가산오광대 보존회는 사천시 용현면 선진 길 467 사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Tel.055-854-6669)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