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의 길&숲] 숨이 쉬는 삶터–사천강 생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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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의 길&숲] 숨이 쉬는 삶터–사천강 생명길
글⦁사진 이용호
징검다리가 정겹게 놓인 사천강

사천의 젖줄 따라 길과 숲 생태 탐방

조붓조붓 박혀 있는 징검다리를 건넌다. 제 몸 가누기도 힘겨운 돌들이 물길도 내어주고 틈새로 파란 하늘까지 보듬은 채 사이좋은 이웃처럼 강둑 저편과 이편을 이어주고 있다. 붉은 잎들이 빈 가지만 남기곤 한 계절의 서사를 집필하고  있는 강변. 돌다리에 걸터앉아 강 품에 귀를 맡긴다. 한 줄기는 사천만으로 보내고 저만치 달려오고 있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은 높고 하늘은 깊어졌다.

사천강은 사천의 젖줄이다. 자연의 숨 터고 사람의 쉼터다. 고성 상리에서 첫걸음을 뗀 강줄기는 감곡과 대곡천 등 정동의 동맥을 이끌고 학촌과 대산의 역사를 편찬해 수청과 예수의 숲 그늘에 안치시킨 뒤  광활한 고읍 들판에 해마다 달달한 열정의 감 불을 주렁주렁 순산하고는 사천만으로 30여Km의 긴    여정을 베푼다.

 

애민정신이 깃든 예와 공존의 오인숲

오인숲이 전해주는 예와 공존에 관한 명강의

오인숲에 앉아 연로한 나무의 청춘을 듣는다. 먼 세월 변함없이 드리운 그늘은 나무의 삶이다. 이구산 능선 따라 공자의 고향 서사가 스멀스멀 묻어나올 것만 같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던 다섯 목민관의 지순한 애민정신이 팽나무와 느티나무 굳은 줄기 따라 각인되어 사시사철 맑은 바람을 뿜어내고 있다. 백성에 대한 예의가 살아 숨 쉰다.

예수리 일대는 사천강 정비 사업이 막바지다. 수심과 강폭을 다듬어 수해를 예방하고 친수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그러나 이곳이 귀한 수달을 비롯해 철새와 민물고기들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인 점을 감안하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

 

가을을 닮아가는 사천강

조심조심 걸음 훔치며 만나는 사천강 보물창고

논밭은 벌써 겨울 채비를 마쳤다. 깡마른 숲 사이로 개구쟁이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참새 떼에게 강은 행복한 요람이다. 인기척에 놀란 황새가 꺼억거리며 눈치를 준다. 주둥이를 담구고 놀던 물오리새끼들이 엄마의 신호에 따라 줄행랑을 친다. 사람이어서 미안한 순간이다. 조심조심 걸음을 훔치는 일은 자연과 상생하는 지혜일 것이다.

오붓한 대 숲을 돌아 죽담마을에 들어서니 포근함이 안겨온다. 수문 너머 포효하듯 질주하는 강의 몸부림이 역동적이다. 여울목 한쪽으로 짙게 기운 단풍이 물빛에 투명되어 홍등을 건 별천지 같다. 팔각정에 잠시 앉아 명화를 감상하며 호사를 누린다. 개 짖는 소리마저 정겹다.

 

바람이 숙성되는 수청터널

대곡 수청 숲이 키워낸 숨과 쉼과 삶의 희망길

이 길은 이순신바닷길 중 제1코스인 사천희망길이다. 선진리성까지 약 13Km 여정을 이어가며 대곡과 수청 예수(오인) 등 곳곳에 아름드리 숲을 낳아 사람과 자연의 얘기를 숙성시키고 있다. 죽담교를 지나면 거대한 블랙홀 같은 바람터널을 만난다. 수청 숲이다. 오래전 마을에서 조성한 이 숲은 사천강의 맑은 물과 우람한 그늘이 어우러져 사시사철 사람과 바람이 민박하는 청정도량이다. 사람들은 예부터 마을의 허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숲을 가꾸었다. 그 숲은 숨이 되었고 쉼을 나누었으며 넉넉한 삶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숲에 찾아든 사람의 온기가 바람을 일구고 나무는 그 기운을 하늘로 이어주는 거대한 신앙의 근원이었다. 공존하는 세상이 평화롭다.

여름이 비워준 평상에 앉아 나무의 노고를 읽는다. 졸졸졸 장단 맞추는 물소리 따라 스스럼없는 계절의 순환이 사랑스럽다. 대곡 숲의 유혹을 뿌리친 채 수청교를 건너 다시 둑을 따라 내려간다. 건너편에서 바라본 수청숲이 대견하고 경이롭다. 저 듬직한 숲의 세월이 사람과 마을과 역사를 건사해 왔을 것이다.

 

고읍을 밝혀주는 명품 단감 등불

사천강이 키워낸 고읍의 명작 단감 전등불

철늦은 코스모스가 물오리들과 밀어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정동 들판과 그 너머 고층아파트까지 한 폭의 풍경 속에 옹기종기 모여 들어 정겹다. 당도를 높여가는 단감행렬이 고읍의 곡창에 불길처럼 타들어간다. 길도 덩달아 달달해진다. 시선은 곁과 옆보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게 더 아름답다. 강변 깊이 터를 잡은 갈대숲과 올망졸망 몸매를 다듬는 조약돌의 한낮이 햇살보다 부지런하다. 미련도 집착도 없이 가고 맞는 일이 행복의 이치임을 강은 말해주고 있다.

고읍 들판엔 가로등이 없어도 좋겠다. 빨간 단감 전등이 고읍의 거실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별과 달빛까지 내려와 한바탕 축제를 여는 고읍은 사천강이 키워낸 삶의 곡창이다. 그 터가 튼실하기에 강은 풍요롭고 둑길도 찰지다. 짭조름한 사천의 이야기가 익어가고 있다. 사천강이 푸릇푸릇 커가고 있다. 사천 사람들이 건강하게 흐르고 있다. 행복해진 귀를 건져 다시 징검다리를 건넌다. 하늘이 더 깊어 곧 겨울이겠다.

 

사천강을 살찌우는 철새가족들
코스모스 곱게 핀 사천강 둑방길
그리움이 물드는 강변길
사천강 대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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