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내리는 은하수 반딧불이

얼마 전 삼천포 도서관에서 진행된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 강연을 들은 후 생활패턴이 아주 살짝 바뀌었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달리기도 하고 주말이면 온 가족 출동하여 용두공원으로 산책을 하러 가는 게 하나의 패턴이 되었다.

용두공원까지 오가며 한 시간, 저수지까지 돌고 내려오면 30분,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의 걷기다. 처음엔 온몸이 후들거려 용두공원 다녀온 날이면 낮잠은 필수였다. 운동도 계속하니 내 몸도 단련이 되는지 이제는 걷기만 하면 다소 지루해 중간에 전력 질주나 파워워킹을 해보기도 한다.

매번 갈 때마다 용두공원에 감탄을 한다. 푸르른 녹지와 잘 정돈된 하천에는 야생토끼와 오리가 있어 당근과 배춧잎이라도 챙겨가는 날은 아이들 기분도 최고다. 시에서는 관리를 잘해주고 있고 시민의식도 높아서 공원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우리 집 정원이면 좋겠다는 엄청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용두 공원 위 저수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 올라가면 저수지 맨 위쪽 사잇길에서는 청둥오리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저수지 언저리 물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이름은 모르지만, 그 모습이 마치 말레이시아 반딧불이 투어에서 본 맹그로브 숲을 연상케 했다. 쿠알라 셀랑고르 강변에 어둠이 깔리면 맹그로브 나무는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반짝 반딧불이 세상이 된다. 이 숲에도 반딧불이가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수박을 잔뜩 먹은 여름밤이면 대문 밖 텃밭에서 시원하게 소변을 보던 기억이 난다. 30촉 백열등에 삐걱대는 나무 널판의 구멍 아래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재래식 화장실의 으스스함보다 훨씬 안전하고 덜 무서운 실외 화장실이 제격이었다. 가로등과 손전등이 없어도 은은한 달빛 아래 반딧불이 잡느라 무서움은 저만치 가고 없었었다.

남양 시골집에서 벌리 주택단지로 이사 온 이후로는 반딧불이를 본 기억이 없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개체 수가 확연히 줄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은 무주 반딧불이 축제가 다인 줄 알았는데 2010년 하천 정화작업 이후로 남양주와 경기도 광주, 경북 영양, 제주 곶자왈, 부산 태종대 등 전국 곳곳에 반딧불이 개체 수가 늘어나 축제가 열리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인근 진주와 거제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하니 우리 동네도 조금만 노력하면 반딧불이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현재 국내에는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까지 볼 수 있는 애반딧불이와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 볼 수 있는 늦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등 8종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다슬기, 달팽이 등을 먹고 하천과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반딧불이가 많이 서식한다고 하니 용두공원을 가본이라면 이곳이 반딧불이가 서식할 최적의 공간임을 알 것이다.

저수지와 그 아래로 흐르는 하천과 수풀임까지. 가로등 불빛이 없어도 반딧불이 불빛 따라 풀벌레 소리,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살짝 보태어지는 나의 숨소리와 발소리만으로 밤마실을 다녀오고 싶다. 용두공원에 어둠이 깃들면 밤하늘에 내려온 은하수처럼 반딧불이 잔치가 열릴 상상에 벌써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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