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각산 봉수대(角山 烽燧臺)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 각산에 있는 고려시대의 봉수대로
각산의 정상인 해발 398m 고지에 있는 봉수대이다.

 

오랜만에 케이블카를 타고 각산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각산에 올랐던 때가 꽤 오래다.
한때는 야간 산행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까마득한 옛날이다.
약수터를 지나 봉화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봉화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위로가 되었고 내게 불필요한 찌꺼기들을 걸러 주듯 편안했었다.
봉화대에 걸터앉아 가볍게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생각에 잠기곤 했었는데
긴급한 순간에 통신의 수단이 되었던 봉화대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사천시의 문화재자료에 보면 경상남도 지정 기념물
사천 안점산 봉수대와 우산 봉화대가 있고 민속 문화재로는 각산 봉수대가 있다.
사천 각산봉수대(泗川 角山熢燧臺)는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 각산에 있는 고려시대의 봉수대이다.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96호 각산 봉화대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 각산봉수대로 변경되었다.
봉화는 ‘봉수’라고도 하며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의 연락방식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다.
국가의 정치,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기록상 우리나라 봉수제의 확실한 출발은 고려 중기로 보고 있으며
고려 원종 설치된 것으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다.
고려시대 때 설치하여 조선 고종 32년(1895년)까지 실제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시 봉수망의 집결지는 서울에 남산에 있었고 간선을 직봉이라 하고
보조선을 간봉이라 한다.

 

 

평상시에는 횃불이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4개, 접전을 하면 5개를 올렸다고 한다.
만약에 날씨가 문제 되면 봉졸이 차례로 달려와서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남해 금산에 있는 구정봉의 연락을 창선 태방산을 거쳐 받았다. 고려 때는 이를 다시 용현면의 침지 봉수와 곤양면의 우산 봉수로 보냈다. 조선시대 세종 때에는 봉수망의 정비로 침지 봉수와 서낭당 봉수를 폐지하고 용현 안점 봉수를 설치하여 연락하였다.
또한 사량도의 공수산 봉수를 고성 좌이산 봉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각산 봉수대는 많은 자연 돌을 모아 둥그렇게 만든 형태이다. 널찍하고 둥그런 단위의 중앙에 또다시 둥근 단을 쌓아 올렸는데 아랫단보다 높직한 모습이다. 2개의 단에는 불을 피우기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각의 뚫린 공간이 남아 있으며, 아랫단 한쪽에는 위로 오르는 계단을 두기도 하였다.(네이버참고)

지금의 풍경과는 차이가 나지만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운해가 실크스카프처럼 바다 건너편 섬을 휘감는 날이면 좋은 일이 있을 것도 같고 아름다움에 넋을 빼고 바라보던 시간을 소환하니 얼큰하게 취하는 묘한 기분이 살아난다.
봉수대 아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예전보다 어찌나 복잡해졌는지
세상의 모든 볼거리를 다 옮겨다 놓아서 눈도 생각도 복잡해진다.

잘 가꾸어진 케이블카 정상에는 덥다 못해 뜨거웠지만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위로하며 속삭인다.
소박한 자연은 교만한 우리에게 역사의 흔적을 간직해주고 겸손하라 말하는 것 같다.

 

다른 글 읽기

최근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