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단상(斷想)_내가 좋아하는 그곳 ⑥

근로자의 날, 똥통에서

글・사진 조영아

 

5월 1일, 근로자의 날 휴무다! 현직 근로자로서 누려 마땅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채, 사무실로 향했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보고서 때문이다. 이놈의 보고서, 보고서!! 금쪽같은 휴일에 이 짓(?)을 꼭 해야 하나, 왠지 서글프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해서 사무실을 나왔다. 바람도 좀 쐬고 맛난 거라도 먹고 오자, 싶어서다. 목적지는 대교공원 근처 단골 식당. 용현 무지개빛 해안도로를 지나 실안 해안도로에 접어들었다. 그림 같은 바다 풍광이 스냅사진처럼 스쳐 지나간다. 저게 바로, 언제 봐도 감탄스러운 우리 동네 플렉스! 소유하기는 어려워도 맘껏 누릴 수는 있으니, 그거면 충분해.

 

자연이 주는 치유 효과 덕분인지,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저만치 똥통(공식 명칭은 ‘산분령길 소공원’)이 보이길래, 나도 모르게 차를 세웠다. 이런저런 추억이 묻어 있는 장소라 그런지 오랜만에 왔는데도 익숙하고 편안하다. 고약한 냄새가 사라진 것만 제외하고는 달라진 게 없다. 공원 앞바다 풍경도 그대로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서 놀다 가자! 까짓것 내일 일은 내일 어떻게든 되겠지.’

 

차 뒤 짐칸에 실려 있는 나의 사치스러운 캠핑 의자를 꺼냈다. 얼마 만에 빛을 보는지! 바다를 바라보며 정자 옆 그늘에 앉았다가 추워서 볕이 드는 곳으로 옮겼다. 책을 꺼내 읽고 있는데, 머리 뒤통수와 등에서 따끈함이 느껴졌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기분 좋은 느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슬슬 배가 고파져서 아까 가려고 했던 식당에 갔는데, 쉬는 날! 이분들도 근로자라서? 돌아서는데, 옆에 꼬시래기 김밥을 파는 푸드 트럭이 보였다. 한 도시락 사서 다시 똥통으로 돌아오니 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들로 북적인다. 참기름 듬뿍 발린 꼬시래기 김밥을 먹으며 주변 사람들의 면면을 훔쳐보았다.(카메라를 들이대어 그들의 소중한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사진은 찍지 않았다.)

 

맨 안쪽 벤치에는 남자가 통기타를 치고 그 반주에 맞추어 커플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 곡을 마치면 남자는 여자에게 자상하게 설명을 한다. 선곡된 노래로 보아 나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다. 그 옆 벤치에 방금 또 한 쌍이 자리를 잡았다. 노래 부르는 이들보다 좀 더 젊다. 조근조근 얘기를 나누며 챙겨온 점심을 먹고는 금방 떠난다. 이제, 맨 가운데 정자다. 열 명 남짓 되는 여자들이 모여 있다. 50~60대로 추정된다. 내 위치와 아주 가까워서 듣지 않으려고 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거니와, 솔직히 공원 내 모두에게 들릴 만큼 그들의 목소리는 컸다! 직장 동료들로 근로자의 날을 맞아 나들이를 온 것 같다. 직장인의 만국 공통어, 상사 험담이 이어진다. 한 팀장 이름이 등장하고 너도나도 신명나게 속풀이를 해댄다. 근로자의 스트레스 해소에는 휴식보다 나들이보다 바로 저런 수다가 으뜸이지 않을까.

 

뉴스를 켜니, 이 시각 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노동절 집회가 열리고 있다. 펜스를 부수고 경찰을 때린 혐의로 노동자 4명이 체포되었다 한다. 같은 날, 같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가지가지다. 날이 날인지라, 평범한 보통의 서민들이 살만한 세상이 더 간절하다. 사람 사는 세상, 그런….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나도 갈 채비를 한다. 정말 자~알 놀다 간다. 시쳇말로 ‘찐힐링’의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일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음악 소리를 한껏 올린다. 나만의 걱정 퇴치법이다.

 

다른 글 읽기

최근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