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리성의 봄

글•사진 김도숙

 

 

온 누리가 환한 꽃밭이다. 며칠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더니 한꺼번에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겨우내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낸 봄이 주는 선물이다. 시청 앞 광장에도 벚꽃길이 눈부시다.

벚꽃 명소인 선진리성을 찾았다. 평일인데도 선진공원에는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과 선진리성으로 들어가는 도로변에도 벚꽃이 활짝 피어 그 멋을 더하고 있었다.

선진리성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면 화사한 벚꽃들이 반겨 준다. 그러나 새로 쌓아 놓은 커다란 돌로 이어진 성벽이 왠지 부자연스럽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새롭게 쌓은 왜성

예전에는, 허물어지고 일부 남아 있었던 이끼 낀 토성이 보이는 언덕배기에 서서 바람에 흩날리던 꽃잎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사천만의 푸른 빛이 아련한 봄날의 정취를 일깨워 주어 선진리성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게 해 주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돈을 들여 새롭게 축조한 성곽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유서 깊은 옛날의 멋을 없애 버려 너무나 아쉬운 곳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잃어버린 추억의 한 장소가 되어 버렸다.

사천에는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삼천포로 들어오는 길목의 플라타너스길, 대방의 벚꽂 가로수길, 남일대해수욕장 등등.

아름다움은 새로운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를 보존하고 가꾸는 데 있다. 사천의 경관을 꾸미는 일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들이 미적인 눈을 좀 더 길렀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또, 언젠가 보았던 신문기사에 따르면, 선진리성은 왜성(倭城)이 아니라고 하였다. 정부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사천 선진리성, 울산 학성, 김해 죽도성 등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축조한 왜성 7개소를 국가지정 사적에서 지정기념물로 격하 지정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천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선진리성이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 남해안 지방에서 조세로 곡식과 포백을 왕경(王京)으로 해상 운송하기 위해 보관하던 조창(漕倉)인 ‘통양창성’이 있던 곳이고, 바로 옆에 고려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이 남아 있어 왜성이 아니라며 재조명해 줄 것을 2회에 걸쳐 경남도와 문화재관리국에 건의하였다고 기사에 실려 있었다. (오래 전 기사 스크랩으로 신문의 한 귀퉁이만 남아 있어 신문사와 일자는 알 수 없음.)

그러나 향토사학자들은 <동국여지지>와 <고려현여지승람>에도 선진리가 조창터로, 이를 지키기 위해 성이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정부가 국가사적지로 재조명해 줄 것을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되어 버렸다.

게다가 관에서는 과거의 토성마저 없애 버리고 왜성의 모양으로 새롭게 축조해서 더 이상 재조명해 볼 거리마저 사라져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

그래도 자연의 섭리는 어길 수 없다. 아무리 추웠어도 봄은 오고, 꽃은 활짝 피어났다.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으로 개화기는 점점 빨라지고,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연 봄날이지만, 한순간 지나갈 이 봄날을 잠시나마 나도 누리고 싶다. 벚꽃 그늘 아래에서 삼삼오오 봄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오늘은 꽃비가 흩날린다. 눈이 부시게 황홀하다.

 

상춘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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