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사진 김도숙
긴 겨울이 끝나 얼음이 녹고 싹이 트는 ‘우수(雨水)’도 지났지만, 아직 갯가는 바람의 촉감이 서늘하다.
모처럼 대방진굴항을 찾았다. 가까이 있지만 철따라 한 번 정도 찾게 되는 곳이다.
움푹 들어간 굴항은 고려시대 우리나라 연안(沿岸)을 빈번히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방비하기 위하여 설치한 구라량(仇羅梁)의 영(營)이 있던 곳으로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있었다.
그 뒤 구라량이 폐영(廢營) 되면서 소규모의 선진(船鎭)으로 남아 있다가 조선시대 말 순조 때 비로소 이곳에 굴항(掘港)을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
녹음이 무성한 여름이거나 단풍이 물드는 가을날에 작은 배들을 품고 있는 어항 같은 굴항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기도 한다.
굴항을 둘러 싼 돌담을 따라 걸어 본다. 켜켜이 쌓아 올린 돌담에서 그 시절 민초들의 애환이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인적 드문 이른 봄날, 대방진굴항에는 봄을 깨우는 바람이 오래된 나뭇가지를 흔든다. 소리 없이 지나가는 길고양이의 등에도 봄 햇살이 반짝거린다.
굴항 끝에는 확 트인 바다를 보며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었던 ‘들물횟집’ 이 있었다. 단체 회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 찾던 곳이건만, 지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펜션을 겸한 카페가 들어 서 있다. 세월의 흐름 따라 많은 것이 변해 갔다.
굴항에서 빠져 나와 골목길을 따라 마을로 접어들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대방 마을이 새롭게 조성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잔디밭과 쉼터도 만들어져 있고, 알록달록 그림을 그린 담벼락과 대문들도 눈에 띄었다.


197~80년대에는 집집마다 닭을 키워 닭똥 냄새와 깃털이 날리던 동네가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깔끔한 주택가로 변모해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시내버스가 없던 시절, 대방에 살던 친구들은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늦은 밤에도 걸어서 집까지 가곤 했다. 한때는 그만큼 대방은 시내와 동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골목길을 따라 막다른 곳까지 내려 가다보면 널따란 곳과 만난다. 그곳에는 작은 조선소와 목재소, 철공소가 있다. 미처 자리를 떠나지 못해 여기저기 널브러진 페인트 통이나 선박 기름통이 오후의 빛을 받아 원색의 색채를 띤다. 다 쓰고 버려진 녹슨 통조차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갯가를 따라 걷다보면 베이지색 깨끗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는 집이다. ‘모두자리 하우스’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타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대방의 비경을 알아볼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대방 마을 어디서나 아래로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바다는 친구처럼 늘 정겹다.
아직은 차지만 봄기운을 품은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곳. 파랑보다는 은빛에 가까운 물빛이 반짝거리며 반겨주는 곳. 각산과 마주 보며 서로를 품어 생명이 꿈틀거리는 곳, 이곳이 바로 대방 앞 바다 각산개이다. 이곳 바다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물빛 또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그리고 군영숲과 이어지는 해질녘 바다는 삼천포대교와 만나 마침내 놀라운 예술작품으로 완성되어 우리를 별천지로 데려가 준다.
이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대방 풍경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