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_사천을 걷다, 봄 여름 가을

도보 여행자의 시선_걸으며 생각하며 Ep.9

에필로그_사천을 걷다, 봄 여름 가을
이순신바닷길 1코스~이순신 백의종군로(사천구간)

글・사진 조영아

 

올 초, 우연한 기회로 월간 [사천을 담다]에 글을 쓰게 되면서 사천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이순신바닷길 1코스부터 5코스까지, 고려현종부자상봉길과 이순신 백의종군로(사천구간)까지, 대략 83.60km다. 사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공식 도보 길 중에서 코리아둘레길을 제외한 전 구간을 완주한 셈이다. 두 발로 사천 구석구석에 발도장을 제대로 찍고 나니, 타향이던 사천이 고향이 된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갔다. 그 여정을 다시 돌이켜 본다. (사천 도보 여행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는 [사천을 담다] 4월호부터 11월호에 실려 있다.)

 

#봄

사천강 하구 겨울 철새들

[2022-03-09] 이순신바닷길 1코스, 대곡숲~선진리성 (13.6km 내외, 4시간여 소요)

첫 도보의 설렘, 갓 뿌린 신선한 거름 냄새, 살갗에서 느껴지는 새봄의 기운…, 도보 첫날 아침의 기억이다. 정동면 대곡숲에서 출발하여 사천강을 따라 수청산책로를 걷고, 사천교를 통과하여 해안산업로를 따라 걷다가 선진리성 앞바다 부근에서 도보를 종료했다. 평화롭게 흐르던 사천강과 광활한 사천만의 위엄은 도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엄마 생각, 고향 생각 소환했던 시금치 캐던 대곡마을 어르신들은 안녕하실까? 사천강과 사천만에서 조우했던 철새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2022-03-20] 이순신바닷길 2코스, 선진리성~모충공원 (12.5km 내외, 3시간 30분여 소요)

봄비 내린 다음 날, 선진리 앞바다를 다시 찾았다. 봄비에 성큼 자란 해쑥과 농원에 핀 이른 벚꽃이 여행자를 반겼다. 이순신바닷길 2코스의 숨겨진 보물과도 같았던 종포산업단지 해안 산책로(그 뒤로도 몇 번이나 찾아갔었다.)를 지나, 종포마을 앞 무지개빛 해안도로를 따라 걸었다. 사천해전 거북선 최초 출전지, 모자랑포를 처음으로 마주하고, 아직 봄이 덜 온 썰렁한 모충공원 정상 잔디밭에서 팬데믹이 앗아간 평범했던 일상을 그리워하며 도보를 마쳤다.

 

월등도에서 바라본 사천과 굴 양식장

[2022-04-16] 이순신바닷길 3코스, 사천대교~월등도 (16.3km 내외, 5시간여 소요)

세월호 8주기 아침,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들으며 도보를 시작했다. 3코스는 이순신바닷길에서 가장 긴 구간이다. 완연한 봄을 느끼며 사천대교 위를 걸어서 건넜다. 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활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구포마을 한 농가의 외양간에 있던 송아지, 중촌마을 인근 할머니 손 야무지게 잡고 걷던 어린 손자가 생각난다. 비토교를 지나 별주부전의 고향 비토섬에 당도해서 토끼와 거북이를 따라 무사히 월등도에 입도했다. 월등도에 가려면 하루 두 번 바다가 열리는 시간을 꼭 확인하시길!

 

#여름

정동면 학촌마을 벽화

[2022-06-01] 고려현종부자상봉길, 능화마을~배방사지 (8.3km 내외, 3시간 30분여 소요)

곁길로 새어 고려현종부자상봉길로 향했다. 능화마을 초입, 갓 모내기를 끝낸 볏논과 고려 현종 벽화가 여행자를 맞이했다. 고자봉을 넘어 학촌마을에 이르고,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배방사지가 있었던 정동면 대산마을까지 20리, 아버지의 길을 걸었다. 천년 전에는 없었을 아스팔트 찻길이 도보에 방해가 되었지만, 고려 현종과 아버지 왕욱, 부자의 정이 마을 곳곳에 벽화로 피어 애틋하면서도 색이 고운 길이었다.

 

삼천포대교 위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2022-07-10] 이순신바닷길 4코스, 모충공원~늑도 (8.2km 내외, 3시간여 소요)

사천 도보 여행에서 유일하게 길동무와 함께 걸었던 길이다. 모충공원에서 출발하여 [사천을 담다] 8월호에 실안 포도밭이라 잘못 명명한 송포 포도밭(실안인지 송포인지, 이 동네 분들에게는 매우 중요함!)과 영복마을을 지나, 삼천포대교를 넘어 늑도에 이르는 비교적 짧은 구간이다. 그날, 이른 더위와 높은 습도로 인해 걸으면서 땀을 꽤나 흘렸으나, 실안 해안가와 삼천포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바다 풍경은 최상의 선물이었고 위로였다.

 

남일대 코끼리 바위

[2022-08-07] 이순신바닷길 5코스, 삼천포대교공원~코끼리바위 (대략 11km, 3시간 소요)

사천문화재 야행을 할 무렵에 이 길을 걸었다. 이순신바닷길 마지막 구간이다. 군영숲공원 앞바다를 보며 상괭이의 깜짝 출현을 기대하기도 하고, 대방진굴항에서 고인물에 비친 팽나무 고목과 정박해 놓은 작은 배들의 반영에 매료되기도 했다. 시끌벅적 사람 사는 것 같은 용궁시장을 지나, 삼천포 사람들의 추억의 장소 노산공원을 거쳐 남일대 해수욕장 코끼리 바위에 당도했다. 삼천포 토박이들의 삶과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정겨운 길이었다.

 

#가을

은사마을 보건진료소 앞 볏논

[2022-09-17] 이순신 백의종군로(사천구간)1, 삼정마을회관~다솔사입구 (10km 내외, 3시간여 소요)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들으며 도보를 시작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가을이 물들고 있는 들녘, 농로를 따라 걸었다. 곤명면 삼정마을에서 출발하여 은사마을, 마곡마을을 지나 곤양면행정복지센터가 있는 원전마을에 닿았다. 곤양천변 김동리길을 따라 가을 햇살 제대로 받은 코스모스가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사천구간)의 남아있는 절반의 구간은 가을이 더 깊어진 후에 걸으려고 남겨두고 다솔사 입구에서 도보를 종료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응취루(凝翠樓) 외관

[2022-10-08] 이순신 백의종군로(사천구간)2, 다솔사입구~맥사리 예미골 (8km 내외, 3시간여 소요)

3주 만에 같은 길 위에 다시 섰다. 볏논에 벼는 한층 더 여물었고, 과일은 더 옹골차졌다. 다솔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근처 호경 갤러리를 둘러보고, 추동마을 오사마을을 지나 곤양 읍내에 들어섰다. 읍내 어귀에 있는 cafe 서정리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곤양면 성내공원 맨 끝에 있는 응취루도 어렵사리 찾아 둘러보았다. 종점인 맥사리 예미골은 2~3km를 헤매며 찾아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걷고 나서..

  1. 정확한 이정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점과 종점을 알 수 있는 명확한 안내판과 도보를 하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걸음걸음마다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나 리본 같은 것이 필요하다. 가능한 주변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작은 표식이면 좋겠고, 반드시 직접 걸으면서 도보 여행자의 시선에 맞게 설치했으면 좋겠다.

 

  1. 길 표식과 안내판에 통일성이 있으면 좋겠다. 길마다 표식과 안내판이 다양하다. 아마 담당 소관이나 설치 시기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이후에 다시 정비를 한다면 이 부분도 고려하면 좋겠다.

 

  1. 안내판에 더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매우 거창한 안내판 또는 표지석이 서 있으나 외관에 비해 적혀있는 내용과 지도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특히 이순신바닷길 안내판에는 상세 지명이 없는 이미지에 가까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도보 여행자에게는 이보다 더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가 필요하다.

 

  1. 길 이름을 재명명했으면 좋겠다. 이순신바닷길은 하나의 길에 이름이 둘이라 헷갈리고, 그 외의 길 이름은 제각각이다.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남해 바래길처럼 좀 더 사천스럽고 동시에 따뜻함이 배인 그런 이름, 사천 출신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여러 길 이름을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이름으로 재명명했으면 좋겠다.

 

  1. 길과 길을 연결했으면 좋겠다. 현재 사천 도보 길은 이순신바닷길을 제외하고 각기 떨어져 있다. 길 중에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연결하고(예를 들면, 고려현종부자상봉길 종점(대산마을)과 이순신바닷길 1코스 시점(대곡마을숲)을 이어도 좋을 것 같다.), 그 외는 하나씩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도보 길을 만들어 나가면 좋을 것 같다.

 

  1. 길에 얽힌 이야기들을 상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길의 유래, 역사적 의미, 마을과 사람들에 얽힌 옛 이야기들을 중간중간 읽으면서 걸으면 그 길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고 기억도 오래갈 것 같다.

 

  1. 도보에 적합한 길이었으면 좋겠다. 이순신 백의종군로(사천구간)는 거의 대부분이 찻길이었다. 찻길 바로 아래 충분히 걸을 수 있는 농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찻길에 표지석을 세워 놓았을까? 최대한 찻길이 아닌 둑길, 논길, 산길과 같이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도보 길로 정했으면 좋겠다.

 

※ 개인적인 지식과 생각에 의존하여 작성된 글이라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일 2022년 4월~11월]

 

다른 글 읽기

최근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