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원도심 진삼도로를 따라 걷다

김도숙

 

삼천포 원도심이 무너진 지 오래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된다’는 옛 속담은 한 치도 어긋난 말이 아니다. 진주로 가는 길이라고 해서 ‘진삼도로’ 라고 불린 삼천포 시내 도로를 따라 걸어 본다. 진삼도로 곳곳에 ‘임대’라는 표시의 빈 건물이 수두룩하다. 한때 가장 번화했던 곳이기에 왠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바다에서 생선이 많이 잡히던 시절엔 삼천포에서 선구동은 가장 노른자 땅이었다. 중앙시장을 끼고 있어 사람들로 늘 북적이고, 인파가 많은 만큼 장사도 잘 되던 곳이었다.

 

중앙시장 입구

그러나 지금은 ‘진삼도로’에는 오가는 차량만 간간이 보일 뿐 걷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더구나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도심도 늙어 버린 것이다.

사천에서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고, 학생 수가 가장 많았던 모교인 삼천포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또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삼천포초등학교에서 진삼도로 큰길로 나오면 수많은 건물과 가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에는 ‘삼천리자전거’, ‘고려당빵집’, ‘라라분식’, 남각당건재약방’ ‘시민약국’, ‘라라사진관’, ‘학우서림‘, ’우체국‘. ’삼일약국, ‘인성의원’ 등이 떠오른다.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이라 추억을 남기기 위한 사진관이 성행하였고, 약국들도 꽤 많았었다. 도로에서 조금 안쪽에 자리 잡고 있던 ‘고려당빵집’ 과 ‘라라분식’은 학생들이 가장 좋아했던 장소였다. 특별히 갈 곳이 없었던 삼천포에서 그나마 빵집과 분식집은 청소년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진삼도로변 상가들
진삼도로변 상가들
진삼도로변 상가들

학우서림은 삼천포에서 꽤 유명했던 서점으로 책이나 참고서를 사려고 자주 들렀던 곳이다. 한 때 번성했던 책방도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학생 수가 점점 감소해 감에 따라 책방의 규모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한길에서 골목 안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그마저도 간판만 덩그러니 남은 채 어느 새 없어지고 말았다.

 

간판만 남은 학우서림

 

또, ‘선구동우체국’ 바로 위에는 붕어빵을 빵틀에 구워 팔던 작은 가게가 있었는데, 내 또래 남학생의 집이었다. 그 집의 붕어빵은 국산팥을 풍성하게 넣어 한 잎 베어 먹을 때마다 팥 고명이 줄줄 흐를 만큼 배고픈 우리들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던 맛이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추억의 붕어빵이다.

붕어빵집이 있던 곳

 

우체국을 지날 때쯤 우리는 종종 ‘먼 산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큰 키에 반쯤 감겨진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걷는 듯한 그의 태도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그 사내는 이 지역에서 유명세를 탔다. 시커먼 외투 같은 걸 걸치고 동냥을 하며 하루 먹고 사는 듯했는데, 한내 다리 밑인가 어느 산기슭인가에 살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했지만 정작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알 수 없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먼 산이’라는 남자는 여학생들 옆을 지나가며, 기습적으로 여학생들의 가슴을 만지고 가곤 했다. 무방비 상태로 걷다가 당하면 그 기분은 똥 밟은 것 마냥 고약하고 창피하기만 하였다.

그 위를 따라 좀 더 올라가면 ‘한내다리’가 나온다. ‘한내다리’는 ‘큰내’라는 뜻의 우리말로 이 다리를 경계로 거리를 가늠하곤 했다. 또, 비가 많이 오면 한내천의 수량이 많아지고 그 물은 팔포 앞바다로 흘러갔다. 한내다리 옆에는 작은 여인숙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내다리
한내천- 여인숙이 많던 곳

 

한내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은 ‘새동네’ 굴다리 쪽으로 가는 길인데, 그곳에 삼천포문화원 건물이 있었다.

한내천 – 새동네가는 길

 

다리를 건너 오른 쪽은 5일장이 서는 ‘새시장’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면 삼천포에서 유일했던 삼천포여중‧고가 나온다. 그 당시에는 여중‧고가 함께 있었다. 삼천포여중‧고 거리는 벼와 풀이 무성하던 들판이었는데,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피어 꽃길을 이루었다. 그 길에서 감수성이 풍부했던 소녀들이 삼삼오오 추억의 사진을 찍곤 했다. 지금은 인도와 차도로 거리가 정비되어 코스모스를 볼 수 없다.

코스모스꽃길이었던 삼천포여고 앞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마지막 날은 으레 학교에서 단체 영화 관람을 시켜 주곤 하였다. 진삼도로 남쪽 끝 노산공원 가는 길에 있는 ‘제일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학생들은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극장 안으로 입장하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쯤으로 기억된다. ‘기적(Miracle)’이라는 영화를 본 그날 밤, 나는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주인공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이별이 밀밭의 신(Scene)과 오버 랩 되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기에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스토리는 어린 마음에도 너무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수녀로서 거룩하게 살아가야만 할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는 영화의 내용처럼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숙명 같은 삶이 있는지, 인생을 살 만큼 살고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의문이 든다.

제일극장 자리는 얼마 전, 도시재생사업으로 관광객을 위한 공영 주차장 타워로 바뀌었다. 그곳에 서서 진삼도로를 바라보면 저 멀리 와룡산이 우뚝 솟아 삼천포 원도심을 감싸고 있다. 참 포근한 느낌이다. 작고 화려하진 않지만 소담스런 이 거리가 지난 5~60년 동안 얼마나 많이, 또는 조금씩 변해 왔던가!

제일극장이 있던 자리

 

많은 가게들과 상호들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자신이 관심 가졌던 것만 떠오른다. 그곳에 있어도 아는 만큼 보이고, 마음이 있는 만큼 보일 뿐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우리를 만든다. 삼천포 원도심이 자연친화적이고, 문화예술적인 곳으로 거듭 나 젊은이들이 찾을 수 있는 생동감 있는 거리였으면 한다. 떠나고 싶은 곳이 아니라 고향을 아끼며,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싶은 곳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 후세대들이 보다 정서적이고 안락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앞선 세대로서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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