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여행자의 시선_걸으며 생각하며 Ep.6
‘코바’를 아십니까?
이순신바닷길 5코스, 삼천포대교공원~코끼리바위
글・사진 조영아


첫 구간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을 기억하며
삼천포대교공원 여기저기에 어젯밤 사천문화재 야행의 흔적들이 널부러져 있다. ‘로또 1등 당첨’부터 ‘달고나 성공’까지 서민들의 순박한 소원들이 물고기 모양 오색등 위에서 바람에 나부끼고, 하늘에는 사천바다케이블카가 아침 일찍부터 주어진 여로를 따라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새로운 듯 낯익은 대교공원의 아침 풍경이다.
오늘은 삼천포대교공원에서 코끼리바위까지 대략 11Km를 걸을 예정이다. 넉넉잡아 3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 ‘삼천포 코끼리길’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길은 이순신바닷길 5코스 중 마지막 구간이다. 첫 구간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을 기억하며 이순신바닷길 마지막 여정을 슬슬 시작해 보자.


저 아래 바닷속에는 토종 돌고래 ‘상괭이’가 산다고 하는데
대교공원 바로 옆에 군영숲공원이 있다. 아침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맥문동이 오늘따라 어찌나 싱그럽고 화사하던지 한참을 그 앞에서 머무른다. 이른 아침부터 나온 부지런한 낚싯배들이 보이고, 그 뒤로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은 삼천포 앞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저 아래 바닷속에는 토종 돌고래 ‘상괭이’가 산다고 하는데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왠지 상괭이가 펄쩍 뛰어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그저 기분일 뿐이었다. 상괭이의 극적인 등장은 없었지만, 상상 속에서 귀여운 상괭이의 비상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요즘 흠뻑 빠져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처럼^^) 다음번엔 꼭 만나자고 혼자만의 약속을 하고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시끌벅적하던 그 화려한 시절로의 회귀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바닷길을 따라 동쪽으로 걸어 대방진굴항에 닿는다. 대방진굴항은 고려시대 왜구의 노략질을 방비하기 위해 만든 인공항구이자 군사기지다. 굴항 최고의 매력은 고인물 위에 비친 팽나무 고목과 정박해 놓은 작은 배들의 반영이다. 잘 그려진 산수화 한 점을 감상하는 기분이 든다. 굴항의 또 다른 매력은 백 년이 넘은 팽나무들이 뒤엉켜 만든 깊은 그늘과 삼천포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의 콜라보다.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최적의 은신처를 제공해 준다. 이렇게 멋진 곳에 사람은 없고 문화재 야행의 흔적들만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축제 때만이 아닌 사람들의 일상의 쉼터가 되면 좋으련만. 유람선 선착장 앞을 지난다. 코로나19로 긴 쉼을 가졌던 유람선들이 깨끗이 단장을 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시끌벅적하던 그 화려한 시절로의 회귀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삼천포 말린 생선의 매력이 그 정도인지
용궁시장 안에는 일부러 들어가지 않았다. 괜히 사지도 않을 거면서 기웃거리는 모습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죄송한 마음도 들어서다. 도롯가를 지나는데 길옆에 말리고 있는 생선이 보인다.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던 한 필리핀 이주여성이 창업 아이템으로 삼천포 말린 생선을 온라인으로 팔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생선이 너무 싸고 맛있다는 이유에서다. 삼천포 말린 생선의 매력이 그 정도인지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찻길 먼지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생선은 쨍한 햇살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맛있게 마르고 있었다.
어느 건어물 가게 처마 밑에 울멍줄멍 여주가 열려 있다. 백과사전에 여주는 열대-아열대가 원산지라고 하는데 지금은 마치 여기가 고향이라도 된 양 잘 자라고 있다. 여주를 보면 지구기후변화라는 거대 담론을 차치하고 여주 씨앗과 함께 이곳에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이주민들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사람도 식물도 다 적응해서 살다 보면 그곳이 고향인 거지. 삼천포 토박이들의 삶의 터전인 용궁시장 한 켠에 저렇듯 탐스럽고 싱그럽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여주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빛난다.


노산공원 작은 조선소에서 학창시절 추억을 잠시 소환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노산공원을 향한다. 노산공원 뒷마당에는 최근에 칠한 건지 이미 칠해진 것을 갖다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컬러방파제가 파란 바닷물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햇살에 빛나고 있다. 폐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복합교류공간 7004도 보인다. 하얀 굴뚝이 참 예쁘다. 한두 해전쯤에 이 곳에서 이주여성들과 바리스타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어 더 반갑다.
센터 옆에는 아직도 성업 중인 오래된 작은 조선소가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배 수리 설비들이 이 조선소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부부로 보이는 젊은 분과 눈이 마주쳤다. 또 다른 한 분은 일을 하시다가 갑작스런 여행자의 방문에 흠칫 뒤를 돌아보신다. 응당 나이 드신 분이 일할 거라 생각한 나의 선입견이 살짝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배 수리에 집중하고 계신 모습이 멋지다! 바닷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오면 좋으련만 어찌 날씨가 내 맘 같지 않다.

‘코바’를 아십니까?
이제, 남일대 해수욕장까지는 쉬엄쉬엄 걸어서 한 시간 거리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제주 가는 배를 타는 삼천포신항 여객선터미널이 나온다. 인근에 그늘이 없어 걷기가 조금 힘들 수 있으나 신향마을부터는 숲길과 바닷길이 어우러져 한결 수월하다.
남일대 해수욕장이 보인다! 해수욕장의 상징과도 같은 오색 파라솔이 즐비하고 힘차게 내달리는 수상보트의 질주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한다. 오랜만에 온 남일대 해수욕장의 풍경이 아주 딴판이다. 새로운 탐방로부터 화려한 조형물까지. 코끼리 바위는 안전을 위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탐방로에 설치된 코끼리 바위 조형물에서 도보를 마무리한다. 태고의 자취가 남아있는 삼천포 명물 코끼리 바위는 2022년, ‘코바’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여 활약하고 있다. ‘코바’를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코바’는 코끼리 바위의 줄임말로, 사천시가족센터의 새 브랜드 캐릭터 이름이다. ‘사천시 모든 가족 활짝’이라는 주문을 외며 코에서부터 꽃잎을 뿌리고 다니는 수줍음이 많고 귀여운 아기 코끼리다. ‘코바’의 활약을 기대해주세요!

※ 개인적인 지식과 생각에 의존하여 작성된 글이라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일 2022-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