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리, 아버지의 길을 걷다

도보 여행자의 시선_걸으며 생각하며 Ep.4

20리, 아버지의 길을 걷다
고려현종부자상봉의길, 능화마을~배방사지

글・사진 조영아

곁길로 새어, 고려현종부자상봉의 길을 걷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순서대로 하는 걸 좋아한다. 길도 정방향으로 가야 편안하다. 그런 내가 오늘 아침 불현듯 곁길을 선택한다. 쉰이 넘은 나이에 오랜 습관을 거스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요즘 그런 연습을 자주 한다. 삶이란 것이 정답이 없고 삶의 서툼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니 그저 겸손히 자신을 갱신하고 또 갱신하며 살아내리라 마음먹었다. 다행인 것은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했던 것이 어그러졌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뜻밖의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쏠쏠했다.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서는 잘 안 보이던 것이 여행을 하면서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있어서, 그래서 여행이 좋다. 그 길 위에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이순신바닷길을 따라 걷다 곁길로 새어 찾아온 이 길은 ‘고려현종부자상봉의길’이다. 공식적인 사천 도보 8번째 길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서사의 힘이 나를 압도한다. 그 오랜 이야기 속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능화마을 초입, 갓 모내기를 끝낸 볏논과 농부
능화마을 들목에 있는 고려 현종 벽화

능화마을 초입 풍경, 그리고 회상
시점인 사남면 능화마을을 찾아가는 길섶 풍경은 연두와 초록의 향연으로 충만하다. 유월의 첫날, 음력으로 하면 오월 초순이다. 가뭄으로 더 빨리 찾아온 한더위를 피할 요량으로 일찍부터 서둘렀는데, 마을 초입 갓 모내기를 끝낸 볏논에는 부지런한 농부의 아침 농사일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고, 어린 순(*고려 현종)과 아버지 왕욱의 행복한 미소가 낯선 이방인을 반긴다.

한 대여섯 일곱살 되어서부터이지 싶다. 모내기 중참을 이고 가는 엄마 뒤를 국수물 담긴 노란 주전자를 들고 따라다니기 시작했던 때가. 작고 어린 손은 국수물을 쏟지 않으려고 주전자 손잡이를 얼마나 세게 잡았던지 논에 도착해서 손바닥을 펴보면 벌겋게 자국이 나 있었다. 나이가 더 들면서는 못줄을 잡기도 하고, 어른들 사이에 끼여 모를 심기도 했다. 손이 야무진 편이라 그래도 제법 흉내는 내었는데 다리에 시커먼 거머리가 붙기라도 하면 기겁하여 도망 나오다 질퍽한 논에 자빠져 온몸이 흙범벅이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모내기 논에선 한바탕 웃음잔치가 벌어지곤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대신 이양기 기계 소리만이 허공에 울리고, 고사리손으로 못줄을 잡지 않아도 어린 모는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심겨있다.

 

능화마을 벽화2

부자(父子)의 정(情), 벽화로 피어나다
능화(陵花)마을에 들어섰다. 왕의 능과 꽃밭등이 있는 마을이란다. 고려 태조 왕건의 8번째 아들인 왕욱(王郁)이 선왕의 왕후와 간통한 죄로 현재 능화마을이 있는 곳으로 유배되었는데, 이듬해 왕실에서 자라던 두 살배기 아들 순(珣)이 아버지의 유배지 인근 배방사로 보내졌다. 이때부터 아버지 욱은 유배 5년 후 사망할 때까지 매일 아들을 만나러 능화마을에서 배방사를 오갔고, 그 길이 지금의 ‘고려현종부자상봉의길’이다. 아버지 장사를 지낸 후 개경으로 돌아온 아들 순은 고려 제8대 임금 현종이 되었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에는 왕욱의 소위 말하는 금지된 사랑과 슬픔, 그 대가로 치루어야 했던 혹독한 유배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애틋한 정도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아스라이 피어있다.

 

 

고려 안종(왕욱의 묘호)능지 제단
고자봉 넘어가는 임도에서 만난 어르신

아버지의 눈물이 어려 있는 고자봉을 넘어
이제, 고자봉을 넘어 학촌마을로 향한다. 십 리 길이다. 아버지 욱이 매일 아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에서 아들이 있는 배방사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하여 되돌아볼 고(顧), 아들 자(子), 고자봉이라 하고, 이 마을을 고자실이라 했다 한다. 고자실은 지금의 학촌마을이다. 고자봉 중턱에 있는 안종능지는 현종이 왕이 된 후 묘를 이장하여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인적이 드문 임도에서, 사천시농업기술센터 이름이 적힌 반짝반짝한 수레를 너끈히 끌고 가시는 어머니를 마주한다. 역사 속 아버지의 눈물과 멋쟁이 어머니의 패션이 대조를 이루며 어우러진다.

 

학촌마을 어귀
학촌마을에 걸려있는 2022 지방선거 벽보

학촌마을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오늘은
학촌마을은 평화로웠다. 고요한 적막마저 흘렀다. 마을 회관 옆 평상에 누워 계신 어르신이 낯선 여행자를 본다. 넉살 좋게 인사하고 길을 재촉하는 나의 시야에 마을 벽화보다 더 화려하게 붙어있는 2022 지방선거 벽보가 들어온다. 음…, 이제 뗄 때가 됐군! 오늘은 2022 지방선거일이다.

 

대산마을 가는 길가의 왕보리수 열매
대산마을 벽화

학촌마을에서 배방사가 있던 대산마을까지는 또 십 리 길이다. 아아…, 아스팔트로 포장된 찻길이라니!! 30도가 넘는 초여름 도보엔 최악의 길이다. 저 옆에 보이는 사천강 둑길로 가도 될 것 같은데…. 불평하며 걷고 있는데 길 언저리 과수나무에 잘 익은 왕보리수 열매가 인사를 한다. 얼마나 탐스러운지! 오후에 마트에 들러 왕보리수 한 통 사야겠다. 달콤 떨떠름한 왕보리수 맛을 상상하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대산마을! 행정구역은 정동면이다. 종점인 배방사지를 행해 대산마을을 지나 오른다. 겨우 찾아온 배방사지, 다소 실망스럽다! 흔적도 없는 절터에 비석 하나 안내판 하나 서 있고, 시에서 갓 지어 놓은 정자와 포토존의 공사 흔적만이 난무하다. 20리, 아버지의 길은 여기까지다! 돌아오면서, 요즘의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어가야 할 본질은 무엇이고, 또 시대에 따라 수용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바란다면,
하나, 색이 바랜 마을 벽화를 새로 칠했으면 좋겠다. 특히 능화마을 벽화가 좀 낡아 보였다.
둘, 도보길 시점과 종점이라고 적혀있는 표지가 명확하게 있으면 좋겠다.
셋, 관광 안내지 또는 홈페이지에 시점과 종점 주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넷,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는 잘못된 이정표나 있어야 할 위치에 이정표가 없는 데가 한두 곳 있었다. 길을 직접 걸으면서 도보자의 시선에 맞추어 이정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다섯, 최근에 만든 정자가 서넛 있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이용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 문제도 더 고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고려현종부자상봉의길 종점(대산마을)과 이순신바닷길 1코스 시점(대곡마을숲)을 이어도 좋을 것 같다. 길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둘레길처럼.

※ 개인적인 지식과 생각에 의존하여 작성된 글이라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일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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