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팝콘보다 달콤했던 추억의 주전부리 “뻥튀기”

풍경을 잇다. 사람을 담다 – 잇담
뻥이요~ 팝콘보다 달콤했던 추억의 주전부리 뻥튀기

 

장 구경나선 길에 만난 유년의 지구의

엄마 따라나섰던 유년의 내가 아내 손잡고 장날 구경을 한다. 물오른 오징어도 담고 갓 따온 봄나물과 앙증맞은 화초까지 사들고 총총 걸음으로 장터를 누비다가 뻥 하는 소리에 놀라 멈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벌겋게 달궈지고 있는 지구의 속에 유년의 추억이 부풀고 있었다.

 

눈깔사탕처럼 달콤했던 요술장터

시골 장터는 만국 박람회장이었다. 달콤한 눈깔사탕이었고 요술 상자였다. 5일마다 열리는 장터에는 장마철 하천을 휩쓸었던 호박과 수박이며 돼지랑 염소까지 마실 나왔고 알록달록 옷가지와 꼬까신에 입심 좋은 약장수까지 이국의 원숭이를 대동해 한판을 거나하게 펼친 잔칫날이었다. 잔병들도 거짓말같이 씻겨나가 가난도 한숨 돌리던 축제날, 장날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주전부리가 아닌가.

 

코딱지 빨아먹지 않아도 좋은 장날

할매 속곳 깊숙이 챙겨 둔 동전이 아이들 눈동자를 초롱초롱 빚어내던 장터에는 달고나와 코풀빵과 호박엿까지 명품 먹을거리들이 풍성해 조무래기들은 그날만큼은 짭짤한 코딱지를 빨지 않아도 배불렀다. 그 중 뻥튀기 장수는 단연 인기였다. 미장원만큼 붐볐던 뻥튀기 난전은 뻥 소리 하나로 장터를 장악했고 눈 깜빡할 사이 함박눈 같은 튀밥을 쏟아내며 마술쇼를 펼쳤다. 과자가 귀했던 시절 집집마다 옥수수와 떡가래 뻥튀기는 요긴한 주전부리였다.

 

활화산처럼 솟구친 추억의 용암덩이 뻥이요~

지구의처럼 생긴 쇠 통에 옥수수나 묵은 떡가래를 넣고 당 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장작불 위에서 달궈낸다. 지금은 자동으로 돌지만 그때는 까만 아저씨가 손수 빙글빙글 돌려가며 야무지게 구워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용암이 불덩이를 안고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순간 아저씨는 “뻥이요” 하며 선전포고를 날렸다. 모두 귀를 틀어막은 채 환희의 순간을 기다릴 즈음 ”뻥“하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기적 같은 연기가 사방을 고소하게 삼켜버렸다.

 

유쾌한 마술이 튀겨낸 따스한 사랑

동막골 팝콘의 신화가 쏟아지고 집집마다 주전부리 두둑해지는 장날, 망태를 벗어난 뻥튀기는 아이들의 몫이었다. 한 움큼씩 주워 먹으며 까맣게 물든 입가엔 미소가 가득 머물렀다. 누구하나 나무라진 않았고 내 아이 남의 아이도 가리지 않았던 뻥튀기 장수는 유년의 허기와 가난을 유쾌한 마술로 튀겨 주던 계몽가요 선구자였다. 보리 익는 냄새가 세상 제일 구수했던 들녘 너머 허기진 하루가 말라가던 유년의 길에서 뻥튀기는 배고픈 시간들을 다독이던 사랑이었다.

 

젊은이들 뻥튀기 사랑 이어졌으면

먹을게 지천인 요즘, 건조하고 까칠한 뻥튀기는 여전히 어른들의 간식으로 남아있다. 다행히 다이어트 대용이나 안주로 연명해 오고 있지만 간혹 젊은이들이 대형 뻥튀기를 선물하거나 주전부리로 즐기는 걸 보면 기특해진다. 추운 겨울 누나들이 튀긴 쌀 튀밥 포대에 내 언 손을 넣어주던 추억은 지금도 쫀득쫀득한 온기로 나를 보듬고 있다. 고소하고 부담 없는 뻥튀기 사랑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연기너머 누군가들이 재잘대고 있는 것만 같다

어느새 뻥튀기 난전에 깡통이 줄줄이 서 있다. 짜릿하고 달콤했던 추억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아저씨의 호령에 할매들이 귀를 막으신다. 나는 일부러 귀를 열고 다가갔다. 포개 둔 추억이 다시 팝콘처럼 터져 나오지 않을까. 뻥이요~ 한 봉지 사들고 돌아서는데 하얀 연기너머 소복이 모여 앉아 재잘대는 누군가들이 있는 것만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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