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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사천의 길&숲]
한국의 명품섬 TOP 10 – 그리움이 마중하는 신수좋은 신수도
글⦁사진 이용호
몽돌이 들려주는 짭조름한 섬 이야기
해변에 앉아 몽돌 손을 잡는다. 몽실몽실 닳고 각인된 시간들이 물살에 펴지며 주름같은 섬 얘기가 기지개를 켠다. 곪고 아물어진 역사를 차곡차곡 끌어앉은 몽돌은 이제 영롱한 보석으로 태어나 신수도를 명품 섬 반열에 우뚝 올려놓았다. 단팥죽 옹심이처럼 찰진 설렘이 해변을 수놓은 몽돌밭에서 나는 한 마리 학이 된 듯 반짝이는 알을 품는다. 짭조름한 물길과 섬 얘기가 타박타박 잠을 깨며 길을 연다. 예쁘게 웃고 있는 신수도는 그래서 신수가 좋은 섬이다.
청널풍차의 배웅을 받으며 신수도로 떠나는 포말 융단길
10여분 포말길 끝에서 만나는 신수 좋은 섬
청널 풍차가 시동을 건다. 초록 숲이 꿈틀거리고 선창가 도선이 기지개를 켠다. 끼룩거리는 갈매기 사이로 어른 배들이 덕담을 건넨다. 등대들도 자리를 펴고 긴 방파제 따라 바람과 햇살이 빚어내는 파시가 열린다. 하루 대 여섯 번 떠나는 도선은 차와 사람을 싣고 10여분의 포말 일렁이는 융단길을 건넌다. 청널공원 풍차는 도선이 펼쳐놓은 하얀 포말을 해몽하며 신수를 점치고 있다. 오늘도 신수는 보나마나 사통팔달 유쾌하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듯 솟구치는 물결이 거대한 붓이 되어 용궁시장과 각산을 한 폭의 진경산수화에 담아내고 있다.
그리움이 마중나온 신수도 둘레길을 걷고 있는 상춘객들.
비경 품은 한국의 아름다운 섬 TOP 10
아쉬움이 일쯤 신수도에 입항한다. 알록달록 집들이 구릉을 품은 채 남으로 길게 목을 내민 신수도엔 그리움이 먼저 나와 객을 반긴다. 2010년 행정안전부 한국의 아름다운 섬 TOP10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린 보물섬이다. 남북으로 미끈한 근육을 자랑하는 신수도는 보석창고인 몽돌해변을 비롯해 기암해변과 맑은 물빛은 물론 유려한 구릉이 아름다운 예쁜 섬이다. 최근엔 캠핑장과 시화가 그려진 예술거리도 인기를 끌며 오고 싶은 섬으로 사랑받고 있을 뿐 아니라 힐링의 메카로 거듭나기 위한 투자도 이어지고 있어 명실상부 신수 좋은 명품 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사진위 : 사천팔경이 그려진 해안은 한폭의 예술거리를 연출하고 있다
사진아래 : 어디에 액자를 걸어도 명작이 되는 신수도
시의 고향이자 그리움의 옹달샘
이곳 신수도는 섬 둘레길이 유순하고 예쁘기로 유명하다. 오밀조밀 해안과 기암과 밭고랑 사이를 걸으며 그림 같은 풍경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오픈 갤러리가 바로 신수도둘레길이다. 섬 중심지 본동마을에는 신수도를 노래한 아름다운 시비들이 인사를 건넨다. 언덕배기 교회 아래로 옛 분교가 유년의 추억을 소환하듯 곱게 단장되어 있다. 긴 방파제를 따라 찰랑거리는 파도를 탄다. 사천팔경과 그리움이 물씬 풍기는 시편들이 벽면을 따라 봄꽃처럼 피어나 섬의 매력을 발산한다. 신수도는 시의 고향이자 그리움의 옹달샘이다.
사진아래 : 섬 이야기를 품은채 부화를 기다리는 보물 보따리들
바람과 파도가 부화시키는 몽돌요람
윤슬이 벚꽃처럼 반짝인다. 소곤소곤 밀어를 나누는 바다가 향긋한 사랑을 뿜어낼 즈음 어디선가 유치원 아이들 마냥 조잘대는 소리가 유혹한다. 몽돌이다. 파도에 몸을 맡긴 유려한 춤사위에 영롱한 알들이 부화를 기다린다. 억겁의 세월을 건너온 바람이 그들의 요람을 감싼다. 거대한 부화장이 되어버린 몽돌해변은 그렇게 섬의 역사를 품은 채 모난 세월을 다듬고 상처를 치유하며 섬과 사람들의 지난한 삶을 위무해 왔을 것이다. 산 증인 앞에 선 나그네는 감히 돌 하나 주워 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숭고한 세월의 숲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예의나마 갖추는 걸 염치라 생각한다. 조잘조잘 일러주는 섬의 풍파를 담아들고 대왕기산을 한 바퀴 여민다. 뚜렷한 등로는 없지만 향긋한 숲 내음과 바람의 여정이 스며든 오솔길에는 질펀했던 섬의 애환이 묵은 낙엽처럼 밟힌다. 전 망이 잠긴 대왕기산은 섬의 맏형으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왔을 것이다.
사진위 : 기묘한 나무들이 자장가를 부르며 몽돌밭을 다독이고 있다
사진아래 : 양지뜸에 잠든 오위도총부 용양위부대 박응칠 장군의 부부묘
아픔이 희망으로 치환되는 역사의 숲
언덕에 올라서서 내려다본 몽돌은 신비로움이 내려앉은 생명의 부족 같다. 아련히 들려오는 몽돌의 부화는 몽환의 음향으로 섬을 감싼다. 비탈 사이로 줄기를 받아 올린 나무들이 기묘한 형상으로 솟구쳐 밀림을 거니는 듯 이국의 풍경을 그려낸다. 시련의 역사가 치유되고 있는 것일까? 모퉁이 양지 뜸에 무덤 두기가 눈길을 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이 섬을 지켜온 조선 오위도총부 용양위 부대 박응칠 장군의 부부가 잠들어 있다. 그들의 영혼을 달래며 징표를 남겨준 후손들의 정성이 따스하게 저며 온다. 길은 동편을 따라 구름처럼 고공을 떠간다. 진달래가 지천인 잘푸여산을 돌아 나와 이름 없는 민초들의 무덤 너머 검은 모래가 잠든 해변을 응시한다. 섬이 생의 전부였던 그들에게 응달진 해변은 오늘도 위로를 건넨다. 그 뒤로 수려한 삼천포대교가 그림처럼 펼쳐져 생과 사의 역사를 담아 엮고 있다. 섬은 끊임없이 아픔과 희망을 순환시키며 삶의 숲을 가꾸고 있다.
추도와 아름다운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는 모네의 비밀화원이다
비밀의 화원 추도 품은 모네의 정원
봄 꽃 사이로 파릇파릇 새순을 달고 선 밭이랑마다 찰진 황토가 기지개를 켜는 섬 언덕은 만선을 알리는 통통배들과 사랑에 빠졌다. 뒷동산에서 내려다본 마을에는 형형색색 모자를 눌러쓴 지붕사이 정감 넘치는 골목마다 물질 가는 할매들의 뒤태가 낭창한 게 섬은 한창 봄을 타고 있다. 염시개 해변을 돌아 전망대에 서니 탄성이 절로 난다. 앞바다가 한 폭의 명화처럼 펼쳐져 마치 지중해 어느 언덕에 서서 봄날의 천국을 거니는 듯 몽환과 이국의 정서가 흠씬 풍겨온다. 시선을 뺏긴다. 팔이라도 펼치면 한 마리 새가 되어 유영할 것만 같다. 황토와 초록잎사귀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꾸며내는 풍경이 모네의 정원을 능가한다. 신수도는 오밀조밀 어깨를 맞댄 채 일 년 내낸 싱그러운 섬 숲을 가꾸며 사람과 바람과 바다를 엮어주고 있다. 벌써 십 수 년 여름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은파를 벗 삼아 추도의 비밀을 캐던 때가 있었다. 바다가 외출한 틈을 타 섬의 속내를 살피던 중 섬들도 제 고향이 있어 물밑으로 핏줄을 이어놓고 산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기암과 풍모를 조각하며 섬의 멋쟁이로 살아 온 추도는 지금도 해변을 품은 채 야영과 힐링의 산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위 : 맑은 핏줄 머금은 신수도 구릉길 따라 향기로운 봄날이 익어가고 있다
사진아래 : 윤슬이 노니는 신수도 해변은 그리움이 살고 있는 엄마품이다
신수도에선 내 신수쯤이야 만사형통이지!
고향집 뒷동산 신수도에는 굽이마다 듬직한 아버지처럼 등을 내주는 구릉이 있고 찰랑거리는 해변을 따라 엄마 가슴처럼 따스하게 밀려오는 바다가 있어 사시사철 따스한 숲이 자라고 있다. 해양 전망대에 올라서면 그 숲의 진면목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온다. 저만치 뭍을 향한 그리움이 물길을 만들고 섬을 아우른 길들이 삶터를 이룬 채 바람과 어울려 숨 쉬고 쉼을 고르며 섬의 혈관을 키우고 있다. 팔각정에 앉아 걸어온 길과 숲을 어루만진다. 이국의 평원인 듯 준수하게 펼쳐진 구릉 사이로 오붓하게 열린 길들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져 한 폭의 하늘벽화를 그려 놓았다. 신수 좋은 길과 숲에서 내 신수쯤이야 알아서 무엇하랴! 그저 만사형통이지! 끝.
모퉁이마다 그리움이 끌림처럼 걸려 있는 신수도 둘레길
신수좋은 날들이 쉼없이 오가는 신수도의 그리움 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