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워 시험만 쳤던 기억이 난다. 시험 덕분에 지금도 기계적 암기로 남아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 기계적 암기가 멈추고 생각과 느낌을 보여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난, 사회적 동물임을 확신한다.
기쁨과 슬픔, 외로움, 화 등등 관계를 통해 깊어지고 갈등을 해소한다. 고갈된 에너지 충전 또한 철저하게 관계 덕을 많이 본다. 그래서 사회생활로 늘 바쁜 나에게 동생이 남긴 멋진 명언, 물론 안중근 선생님의 글을 모방했지만 해학이 느껴져 가족들이 박장대소했었다. ‘누나는 하루라도 밖에 나가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돋는다!!’
그래…친구 좋아하는 나는 나잖아.
엄마는 마냥 이런 나를 달가워하진 않으셨다. 친구 때문에 울고 힘들어하는 딸이 안쓰러워 위로와 공감보단 화 섞인 해결방법을 늘어 놓으셨다. 나는 그런 엄마를 향해 친구에게 낼 화를 쏟아 부으며 더 크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는데 우째, 그래도 친구가 좋아. 흑흑“
차암, 많은 시간이 흘렀다.
글을 적다 말고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이 학교생활의 시작이었다. 동네친구들이 고스란히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기에 우리들의 시간은 장소만 바뀔 뿐 늘 함께였다. 물론 중학교도. 그러나 우리들은 고등학교를 가면서 물리적인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더 멀어진 거리는 대학교였다. 그런데 그 때 당시 생각지도 않았던 충격적 사실이 있었다. ‘결혼’이 주는 큰 비극, 남편과 외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친구의 긴 이별.
부산에서 사천으로 왔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씩 모임의 대부분은 부산이었다. 아이를 업거나 유모차에 태워오면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직 아이가 없는 친구들이 서로 봐주며 놀았다.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모임의 횟수가 줄어들고 입시라는 제도 앞에서 우린 거의 모임을 갖지 못했다. 친구보단 아이들에게 온 정성과 신경을 쏟아 부었다. 그러는 동안 부산친구들이 아닌, 사천 친구, 동생들과(이하 친구들)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사천에서 만난 친구들
대부분 아이들은 대학과 군대생활을 하면서 우리들 만남의 횟수도 여유롭게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 입시를 통해 기도와 축하를 함께하며 더욱 돈독해지고 깊은 우정도 느낄 수 있다. 코로나가 심할 땐 통화와 문자로, 조금 완화되면 적정 인원과 시간을 지키며 밥과 커피를 마시는 행복감도 함께 느낀다. 소중한 마음을 내어 커피와 빵, 꽃 등을 선물하며 부모가 함께 확진 판정을 받은 아들을 대구에 있는 대학까지 마다않고 데려다 주는 친구의 우정도 볼 수 있다. 주위 친구들이 양성으로 격리되면 음식과 위로의 마음까지 전달해 주며 처방 받은 약을 약국에서 집까지 전달해 주는 정성도 예뻤다.
친구들은
이렇게 조금씩 생활 속에서 함께 하고 있다. 적당한 거리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저 곁에서 기다리며 웃고 있다. 봄이 왔다며 알려주고, 맛 집도 데려가 준다. 일 보러 멀리 갔다 그 곳 명물도 조심스레 건네준다. 과하거나 부족하지도 않게 나를 편안히 해 준다. 이런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레바논 속담을 옮겨 적으며 조그만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천국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갈 데가 못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