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봄은 역시 바다에서부터 알 수 있다. 갯벌에 초록빛이 무성하고 먹거리들이 속속 봄철을 알린다. 대부분 바다 봄 음식로 ‘도다리쑥국’을 떠올린다. 그런데 도다리가 올라오기 전 꼭 챙겨 먹어야 할 제철 음식은 바로 개불이라고 하고 싶다. 특히 삼천포 ‘실안 개불’의 맛을 안다면 겨울의 마지막 차가움을 달달함으로 녹여낸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처음 ‘실안 개불’을 먹은 건 작년이었다. 전라도 촌에서 살다 와서 바다 음식은 새롭게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많은데 작년 신랑이 겨울 2월에 개불이 제철이라고 먹으러 가자고 했다. 회 먹을 때 해산물로 조금 나오는 음식을 뭘 찾아 먹나 의아스러웠다. 그래도 오도독오도독 꼬들꼬들 식감을 좋아하고 맛도 좋은 것을 사준다니 사양할 일은 아니었다. 중간 크기의 접시에 하나 가득 담긴 개불이 십만원 정도였다. 개불 먹기를 꺼리는 아이들을 위해 회도 같은 크기로 주문했는데 회가 더 쌌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먹어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익히 알던 맛이 아니었다. 어찌나 달던지 달아서 못 먹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우리 가족은 샤인머스켓, 망고, 초당 옥수수도 달다고 처음은 못 먹는 촌 스타일이었다. 세상 살면서 개불이 이렇게 달다니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회를 좋아하는 막내아들마저 한 두 개밖에 못 먹고 신랑이 거의 다 먹고 말았는데 올해 불현듯 개불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이제 3월이라 끝물일 터이지만 못 먹으면 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질 못할 거 같았다. 바람 부는 토요일, 주변에선 매화꽃이며 산수유 구경이 한창이라지만 우린 실안으로 달려갔다. 작년의 기억을 그 담새 까먹은 아이들은 징그럽다고 하면서 안 먹는다고 하다가 하나둘 맛을 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한 접시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너무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고 입에서 달착지근하면서도 쫄깃쫄깃 식감이 좋단다. 사장님이 왜 이리 빨리 먹냐고 놀랄 정도였다. 내년엔 봄 오기전 이 맛을 잊지 말고 꼭 챙겨 먹자고 약속을 했다.
밖으로 나오니 갯벌에선 동네분들이 양동이와 긴 호미같은 것을 들고 채집을 하고 계셨다. 무엇을 잡으시나 궁금했는데 개불을 잡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개불이 언뜻 해삼과 비슷하게 생겨서 바다 속에서 잡아오나 싶었는데 갯벌에서 산단다. 신기하게 개불은 여름잠을 자고 나와서 겨울철 영양분을 채우기 때문에 1,2월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바다의 지렁이라고 할 정도로 갯벌 정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니 고맙고 신기하였다.
타우린, 글리신, 비타민C,E가 풍부하며 여러 아미노산 함유가 있어서 항암이나 면역강화에 도움을 주면서 숙취 해소 및 빈혈에도 좋단다. 변명같지만 봄철로 넘어가기 전 늘 어지럼증을 느끼는데 불현듯 찾게 된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생김새만을 두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고마운 생물이며 보배스런 음식이다.
아직은 바람이 찬 갯벌에서 채집을 하시는 분들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냥 횟집에 가서 먹고 말았으면 몰랐을 풍경이다. 윤슬 가득 찰랑이는 바닷가 아래 많은 생명들이 두 눈에 담을 수 없이 아름다운 실안. 든든함과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고 봄, 여름, 가을을 나고 다시 돌아오는 겨울에 다시 즐겁게 이 자리에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