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그림

먼 길을 떠나는 듯한 뒷모습의 헬가

어쩌면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깊고 어두운 터널을 만나는 때가 있지요.
저에게 20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같았어요.
“아니 그 좋고 반짝이는 청춘이 뭘 그리 어둡고 캄캄한 동굴 같았을까?” 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 거예요. ^^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청춘도 있을 거예요.
구질구질한 내용은 건너뛰고~ ^^

어쨌든 아프고 힘들기만 하던 그때에 나를 위로하는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앤드루 와이어스’의 ‘헬가 시리즈’였답니다.
자취하는 가난한 고학생의 용돈으로 그의 화보집을 샀지요.
그냥 헬가를 모델로 한 그 그림들이 좋았어요.
먼 길을 떠나는 듯한 뒷모습의 헬가…
따뜻한 햇살에 잠겨있는 듯한 헬가…
슬픈 듯 침묵하는 헬가…
나무등걸에 기대어 있는 헬가…
바로 그 헬가들이 저였으니까요…

그리고 생각했죠.
먼 길을 떠날 것이고(네, 먼 길을 떠납니다^^) 견뎌낼 것이다…
먼 이국땅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고 그때마다 헬가의 그림들을 떠올렸고
때때로 따뜻한 햇살이 눈부신 날에 커다란 나무 둥치 아래에 기대어 슬픔을 내어 말렸지요.
그리고 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타국이나 고향이나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한 음영들을 가지고 있기에 음영의 파도를 타느라 그림 그리는 법을 잊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고
또 언젠가는 헬가를 그림으로 그려봐야겠다 생각했지요.
그리고 그 언젠가가 때가 되어 헬가의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원본과는 다른 분위기가 되어버렸지만 저 스스로는 만족합니다.
당분간은 이것보다 나은 그림을 못 그릴 것 같아요. ㅠ

앤드루 와이어스는 헬가 시리즈 그림을 15년 동안이나 아내에게 비밀로 했다는군요.
그리고 드디어 15년 만에 아내 베치에게 공개하던 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앤드루가 한 인터뷰입니다.

이제까지 그린 ‘헬가’ 그림을 다 모으던 날을 기억합니다. 우리 방앗간 갤러리 2층에다 모아 놨는데 드로잉이랑 페인팅 다 해서 250장 되더라고요. “베치, 사실은 말야…” 그동안 한 일을 얘기했더니 충격 받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는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못 그리기만 했어 봐라!”

ㅎㅎ다행히 그의 그림은 인정을 받았고 유명해졌지요.
안 그랬음 아내에게 쫓겨났겠죠? ^^

아래는 앤드루 와이어스에 관한 소개입니다

// 미국을 대표하는 극사실주의 템페라(tempera)기법의 화가 //
Andrew Wyeth는 15년동안 가족도 모른 채 한 여인만을 그리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 작업은 1987년 가족과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독일에서 망명한 헬가 테스토로프(Helga Testorf)라는 여인에 기초한 작업은 1971년부터 1985년까지로 그녀의 나이 38~53세까지의 기간이었으며 두 사람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작업의 시기였던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여인과 화가와의 관계’ 또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의 가족들 또한 충격이었겠죠?!
그 여자 모델의 이름은 헬가(Helga Testorf)였고,
독일에서 망명 온 같은 동네의 주민이었습니다.
그다지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강한 인상의 헬가 테스토르프, 그 여인은 자기에게 찾아온 자신만의 예술적 기회였다고 하면서 그 여인을 처음 보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고 화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헬가를 사랑했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그리는 화가는 없을 것이다…” 라고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저는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이(아니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헬가의 그림이 저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 더 많은 그림을 그리는 꿈을 많이 꾼다. 그건 내 잠재력이다”
-Andrew Wye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