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자락! 동림동 팽나무 어르신 곁에 앉아

풍경을 잇다 사람을 담다 – “잇담”

 

한해의 끝자락! 동림동 팽나무 어르신 곁에 앉아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팽나무와의 인연
동림동 문화예술회관 건너편 언덕위에는 잘생긴 팽나무 어르신 한 분이 살고 있다. 동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명당에 터를 잡은 팽나무는 30여 년 전 내가 이곳에 온 뒤로 가장 많이 만나고 의지하며 기댄 이웃이자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든든한 존재다. 각산에 자주 오르며 길목에서 마주친 인연도 인연이지만 무엇보다 의지적으로 이곳을 찾아 희로애락의 잔정들을 풀어놓고 때론 멍 때리며 생의 색감을 덧칠하던 남다른 나무다.

 

한때 젊은 그림자였던 팽나무의 농익은 그늘
계절의 한 생이 지나가고 있다. 다투지도 반칙을 일삼지도 않고 순조롭게 정권을 이양하고 있다. 팽팽했던 계절은 주름속으로 칩거한다. 한때 젊은 그림자를 거느렸던 팽나무는 이제 농익은 그늘이 되어 넉넉한 평상 하나 지어 놓았다. 온 동네가 마당 안에 들어와 쉬는 언덕. 갈곳 있는 잎새들 모두 떠나 보낸채 근육 몇 점 박힌 가지 달고 선 팽나무는 머잖아 찾아올 겨울 눈들이 막힘없이 송이송이 내려오라고 거구를기울며 하늘을 쓸고 있다. 그의 곁엔 영원한 조력자 바람이 늘 함께 하고 있다.

 

익룡이 찾아온 성스러운 기운
밤새 내린 비로 하늘 마당이 께끗하다. 저 멀리 와룡산 골격이 사뭇 도르라진다. 입궐 하려는지 산자락이 용포를 두른듯 울긋불긋 화려하다. 스멀거리는 바람의 속도에 따라 구름이 변화무쌍하더니 아직 능선을 넘지못한 잔운사이로 신비로움이 인다. 마침내 익룡 한마리 기차바위를 뛰어넘어 와룡의 품속으로 안겨든다. 쭉 빼낸 목이 핏줄로 선명하다. 유려하게 펼친 날개 위로 융단처럼 휘날리는 실루엣이 사뭇 기괴한게 날카로우면서도 보드라운 발톱이 금방이라도 잠든 와룡을 깨울 기세다. 몽롱해지는 사이 포효하듯 침묵의 몸짓은 이내 사라지고 다시 평온이 찾아온 풍경앞에 나는 사신도를 알현한 듯 흥분한다. 성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풍경을 잇고 사람을 담아온 한해
팽나무에 마음 한자락 널어 말린다. 분주한 도심 빌딩사이로 함께 걸어온 풍경과 사람들이 정겹게 걸려 있다. 삶이란 늘 사람의 일이고 그것이 풍경속에 담겨질 때 온전한 생이 되는것이다. 그 작품의 배경이 사천 삼천포라는 사실이 행복하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개를 넘고 뭍과 바다를 잇는 포구에서 팔닥거리는 생명의 함성을 먹었다. 사계절 요지경처럼 연출되는 사천의 풍광에 객지 풋내가 숙성되었다. 짭조름한 맛과 질펀한 멋들이 어우러져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삶터를 이룬 사천은 그래서 잇는 풍경과 담는 사람들이 살갑다.

 

새로운 채색의 시간. 한해는 다시 뜬다
한해가 저문다. 모든 생들의 작은 경계가 지나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고 희망의 청신호다. 시작과 끝의 매듭이 필요한 삶에 구획의 의미는 필수다. 잘 여문 저 팽나무도 실은 한 살 한 살 경계의 흔적을 나이테라는 무늬로 차곡차곡 쌓아왔다. 우리 삶의 경계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또 하나의 색을 칠해야 할 시간이다.

 

2023년 토끼 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세요
풍경을 잇고 사람을 담는 일은 행복하다. 그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천이라 더 호사롭다. 혼자가 아닌 함께 잇고 살가운 풍경들을 나누는 일은 마치 계절의 일생을 닮았다. 치열했던 우리의 그림자가 팽나무 그늘처럼 노련하게 익어가는 세모이길 빌어본다. 저 팽나무처럼 잇고 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만났던 익룡의 성스러운 기운이 새해에도 더 웅비하길 바라며 2023년 토끼의 해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부디 건강하시길 빌어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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