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쇠 솥이 걸린 큰방 부엌과
알루미늄 백 솥이 걸린 작은방 부엌
뒤 곁은 그들을 잇는 사이길 그 중간에 지붕보다 높은 굴뚝이 서 있었어,
비가 오면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어깨에 맞기도 했고
똑똑 떨어져 내려 살짝 홈을 패인 황토 빛 그 길
잔돌들이 빗물에 잠기면 지렁이가 기어 다니기도 했어
내 가슴께나 오는 돌담 텃밭에는 대추나무 두어 그루 그 곁에는 상추밭
유월본디는 담벼락을 타고 올랐고 보랏빛 꽃들이 무척이나 선명하고 예뻤지
또 그 위 칸에는 비스듬히 포구나무가 자리하고 고구마며 감자며 가지 오이 호박이랑 무 배추 콩 녹두의 검은 꽈리도 해마다 보았지
토종젖꼭지나무는 벌이 얼씬하기도 훨씬 이전에 묵돌이란 아이가 입이 부르트고 혓바닥이 빨갛게 솟도록 따먹는 통에 집의 다른 아이들은 맛도 모르고 따먹을 생각조차 못했었지 하도 입이 아파 며칠 쉬었다 만나는 푹 익은 무화과 혀끝에 닿음과 동시에 목에서는 목탁 소리가 났지
우리 할머니는 흰밥 보다는 콩이나 팥을 많이 넣고 구수하게 지은 가마솥 밥을 좋아하셔서 마치 맛있는 떡을 먹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물은 겨울은 따뜻하게 김이 모락모락 올랐고 여름이면 시원하고 물맛이 달았다. 돌 틈마다 이끼가 가득하였고 우물에는 주황색 몸통에 초록색 뚜껑이 있는 둥근 귀걸이를 한 김치 통이 떠오른다. 우물 곁에는 감나무가 있었고 우리들의 간식거리였으며, 그늘을 주어 그곳에서 홍합 살을 꼬챙이에 끼우던 기억도 묻어난다. 그 뽀얀 국물은 그냥 마셔도 참 좋았다. 감나무가 많이 자라자 우물을 덮는다며 할머니는 감나무를 몽댕이로 만들어 버리고 그 후 얼마지 않아 그것마저도 싹둑 잘라버렸다. 우리들의 서운함은 베어져 나갈 때 마다 감하여져 나중엔 거의 포기 수준이었지만 다행히 옆집 감나무가 건재하고 있었기에 바람 불면 떨어져 내리는 걸 줍는 이가 주인인 그 시절이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가 그 감나무 아래의 추억이 있다
뒤 곁 부엌 앞 커다란 바위 아래는 포근한 흙 속 깊이 우엉이 자리했었고 우엉 잎의 뒷면은 하얀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지
붉은 벽돌로 쌓은 장독간에는 어린 내가 대여섯 들어 갈수 있는 커다란 장독부터 꼬막손 아이들이 쑥을 캐서 담아 놓을 수 있는 작은 장독대까지 스무개 남짓의 장독이 있었고, 그 곁 위로는 간짓대를 버팀목으로 하는 감나무부터 닭장까지 이어지는 빨랫줄이 있었고 간혹은 장독대에 올라서서 빨래를 널거나 걷기도 했었고 그곳에 올라서면 옆집 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이기도 했었지
화장실 마주하는 장독대 아래에는 진흙처럼 끈적이는 밭에는 보랏빛 창포가 이른 봄이면 새의 조동아리모양 쏙 내밀 때면 너무 예쁜 그들은 보고 웃느라 마당은 웃음 그득 했었다
봄이 온다 싶으면 잽싸게 햇살이 자랄 듯한 따뜻한 땅으로 눈을 돌려 쑥을 캐기 시작했다. 장날이면 할머니는 남새밭과 뒤 터에서 자란 채소를 손질하여 시장에 내다 팔았고, 고사릴 손이 캔 독 안에서 방긋 바깥구경을 기다린 쑥도 함께 내어 가셨다.
감나무 꽃이 지고 손톱 만하게 알맹이가 자리기 시작하면 언제 커지나 하며 목을 놓아 일상을 보냈다. 거의 자란 떫은 감(따발이 감:이라 불렀는데 익기도 전에 떫은 그 감을 먹고 나면 입이 한발 떼기(한입가득)여서 그 이름일 것이라는 추측)이 바람이 불면 익기 전에 골짜기에 떨어져 내리면 감 떨어지는 소리에 벌써 내일 아침이 설레기 시작했다. 작은 장독에 물을 넣고 소금 간을 하여 옆집에서 떨어진 그 떫은 감을 아침마다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주워 옷섶에 싸안아 독 안에 넣었고 그럴 때면 엄마에게 혼이 나고 했었다. 감물은 쉬이 빠지지 않는 얼룩을 낳기 때문이었다.
세 살 아래 남동생은 늘 깎아놓은 밤톨 같다고 울 할머니는 말씀하셨지 그 동생이 백일해를 앓아 엄마는 우엉이며 엉겅퀴며 비 오는 날 집 없는 달팽이 식구가 장독대에 기어 나오면 그들을 잡아 뽀얗게 삶아 동생에게 주는 것을 보았지 매번 잡아도 그들은 끊임없이 장독대를 맴돌았고 비 갠 후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 쬐면 꼭 무지개 빛으로 그들 자국이 가득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