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이들과의 수업을 마무리하고 친구와 가까운 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시간은 늦은 감이 있는 오후 두 시 반.
가볍게 준비해서 고성 구절산으로 움직였다. 내비게이션을 켜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가 멀다.
50분을 달려 도착한 그곳. 입구는 길이 비좁고 불편했다. 주차장이 협소하여 산에서 차 한대가 내려와야 한대가 올라 갈수 있는 상황이었다. 입구 전부터 줄지어 서 있는 차들을 보니 저녁까지도 오르기는 힘들 듯하여 걷기 시작했다. 8월 중순의 때양볕은 뜨거운 열기로 친구와 나를 달달 볶았다.
처음부터 경사가 있어 앞도 옆도 보지 않았다. 땅만 보고 걸음 힘듦이 덜 할까 하여 땅만 보고 걸었다. 고개를 드니 눈앞에 보이는 폭포. 감탄이 절로 나왔다.
힘듦은 온데간데 없고 친구와 나는 어린 아이처럼 신이 났다. 눈앞에 보이는 사찰은 폭포암인데 요즘 꽤 유명장소가 되어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곳저곳에 서서 나 오늘 큰맘 먹고 움직였노라. 온갖 폼을 잡았다. 폼 잡고 움직일 때는 힘든 줄을 모른다. 한참을 폭포암을 돌다가 구절산을 오르려 하는데 하산하는 분들이 너무 늦었다며 말린다. 아무리 해가 긴 여름이라 하여도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 산을 오른다는 건 두 초보에겐 위험한 산행일 것이다.
여유가 생겨버린 친구와 나는 사찰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사찰 주변 곳곳에서 보이는 봉선화.
봉선화의 추억은 많은 이들이 갖고 있을 것이다. 이 무렵이면 꽃잎을 찧어다가 손톱 물들이기가 한창이다. 비닐을 잘라다가 꽁꽁 묶어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붉게 물들어 있었던 손톱. 그 손톱이 길어나 초승달 모양으로 첫눈이 내릴 때까지 남아 있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었지? 친구와 30년도 더 지난 일들을 추억했다.
살짝 꽃잎을 따다가 비벼 보았다. 그때 맡았던 그 냄새다. 30년이 더 지났어도 그대로였다.
향은 단순히 향을 느낄 뿐 아니라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붉게 물들여질까? 설레는 맘으로 물들이던 어린 시절이 그대로 전해진다.
엄마가 한 번씩 흥얼거리시던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나도 혼자서 흥얼거려 본다.
처량한 멜로디의 이 곡은 그 시절 힘들었던 엄마의 심정을 대신 했던게 아닌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의 울 밑에선 봉선화를 생각해보게 된다.
조금은 시큰한 풀냄새의 봉선화
봉선화로 추억을 물들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