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봄을 먹다

올해는 봄 가뭄 때문인지 봄소식이 늦다.

여느 때 같으면 냉이꽃이 무릎까지 올라와 산책하는 길을 냉이꽃 길로 만들어 주었을 텐데 말이다. 올해 꽃 소식이 왜 이리 늦나 하였더니 가뭄 때문이었다.

 

주말 아침 남편을 깨워 텃밭으로 향한다.

취미인 낚시를 하러 가기 위해 밭에 함께 온 남편.

언젠가부터 우리 부부에게 이런 규칙들이 생겨 있디.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한 탓인지 나에게만 유리하고 정당한 규칙이다.

 

매년 잡초와의 전쟁에 패하였기에 올해는 이겨보리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패하지는 않으리라는 각오로 잡초매트를 깔았다. 꽃모종을 옭겨 심고, 남편이 삽으로 흙을 옮기는 동안 나는 옆에서 쑥을 캤다.

어릴적엔 봄이되면 쑥을 많이 캤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한 해에 한 번 캐고 나면 초여름이 되어 있다. 먹은 나이만큼 일이 많아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로서의 일, 일터에서의 일, 나를 위한 일. 이렇게만 봐도 곱으로 나의 일들이 많아져 있다.

 

어릴 적 쑥을 캐던 장소는 양지바른 곳에 볕이 따뜻했다.

쑥을 캐다가 보이는 무당벌레를 보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많이 보였던 칠성무당벌레에게 칠성이란 이름도 지어주었었다. 아버지의 유년 시절 생물 도감 책을 꺼내 보는걸 좋아하였는데, 놀 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그때 그 책은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책 속에는 들에서, 산에서, 물가에서 볼 수 있는 꽃과 생물들의 이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진도 아니고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어린아이가 봐도 이해하기 쉽게 잘 만들어진 책이다. 어쩌면 그 책을 통해 동물과 식물들의 이해가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꽃을 삽으로 옮기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성에 차질 않는다. 내가 삽질을 할 테니 남편에게 쑥을 캐라고 했다. 당황한 표정의 남편은 밭 한쪽에서 쑥을 캔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게 와서 쑥 바구니를 건네고 다시 삽을 들고 간다.

남편이 캔 쑥은 누가 봐도 표가 났다. 쑥을 뿌리째 뽑은 듯했다.

쑥을 보는데 웃음이 난다. 남편이 귀여워 보이기도 오랜만이다.

경험의 탓도 있겠지만, 힘을 써야 하는 일을 남편이 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겹기도 한 쑥캐기는 나에게 딱 맞다. 한참을 땅만 보고 있자니 목도 아프고 고개를 들면 머리도 띵하다. 쑥을 노려보며 봄을 맞고 봄을 느낀다.

 

동네 분이 쑥을 캐러 나오셨다. 쑥떡을 만들어 먹을 거라며 표정에서 신이 나셨다. 노란 고물을 얹어 나눠 먹는 쑥떡. 가까운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정이다.

우리는 쑥떡까지는 못 해 먹고, 살포시 된장 풀어 쑥향 가득한 쑥국 한 그릇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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