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의 종합선물세트, 사천실비(實費)

수수한 선술집,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구수한 의자들이 이웃처럼 앉아 있다. 초저녁 서민들의 하루가 집어등처럼 켜진다. 빈자리를 일러주는 주인장의 손짓이 인사다. 메뉴를 정할 필요도 없다. 기본안주에 온갖 해물과 탕까지 바다 종합선물세트가 쏟아진다. 건배속에 때론 고성도 오가지만 지친 하루를 위무하는 축제가 시작된다. 질펀한 안주만큼이나 사연 많은 하루들이 허허롭게 삭혀지는 살가운 쉼터 사천실비.

#1. 술값만 내고 안주는 무료인 사천의 특화 브랜드

실비는 사천 지역의 독특한 식문화다. 6~70년대 포구의 가난한 일꾼들이 허드레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애환을 달래던 서민술집이다. 통영 다찌, 마산의 통술집과 함께 남해안 대표 술집이다. 실비는 말 그대로 실제 비용(술값)을말한다. 한 사람당 2~3만원 비용과 소주3병이 기본으로 나오고 추가 1병당 1만원의 술값을 받는다. 안주는 공짜다. 해산물이 풍부한 장점을 살려 싱싱한 안주를 매개로 발달한 특화브랜드다.

#2. 지친일상 분석한 통 큰 안주의 섬세한 미학

실비는 대략 5단계로 꾸려진다. 초저녁 칼칼한 목과 빈속을 축이라고 잡채와 밑반찬으로 주안상을 깔고, 한 순배 본격 술맛을 끌어 올릴 때 회와 해물세트와 샤브샤브, 계절 특미가 술맛을 유혹한다. 얼큰하게 취기가 달아오르면 속도 조절과 맛의 깊이를 더해주기 위해 생선구이와 찜 등 중후한 안주들이 뒤를 잇는다. “위하여”가 절정으로 치달으면 화룡점정 시원한 국물 요리가 지친 하루를 진정시킨다. 이런 상차림은 바다 사정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음에도 새벽마다 어시장을 누비는 주인장의 노력과 자부심이 사천실비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3. 육해공 집합체 사천의 맛과 멋이 모이는 집어등

사천시는 실비를 브랜드화 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이제는 SNS를 통해 외지에서도 실비체험을 하러 올 정도로 인기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저녁, 실비는 입맛과 살맛을 한방에 살려주는 하루의 용광로이자 내일의 희망을 모으는 집어등이다. 육해공군이 다 모인 사천 실비에서 싱그러운 사천의 맛과 이웃의 살가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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