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나의 처음들에게

사람을 잇다 풍경을 담다 : 잇담

 

삼천포! 나의 처음들에게

 

첫 기억은 오래 간다. 덤으로 추억을 업고 온다. 삼천포는 나에게 길고도 질긴 그러나 활화산을 꿈꾸는 용암처럼 뜨겁게 출렁거리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거기에는 장소와 먹거리와 사람이라는 인연의 매체가 휴화산 속에서 들끓고 있다.

 

삼천포아가씨상
삼천포아가씨의 그리움이 흐르는 노산해안길

장소에 관해 처음을 꼽으라면 단연 팔포 갯바위다. 노산공원이 레트로 아지트로 명성을 날리던 90년대 초, 나는 그곳에서 기타줄에 노래를 튕기며 밤을 지새우던 낙천적 유배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즈음 주병선의 구성진 목소리가 매혹적이었던 칠갑산이라는 노래가 천하를 장악했을 때였으니 유배의 일성은 당연히 칠갑산 가락이었다. 함께 온 동료는 이 노래를 가수보다 더 구성지게 뽑아냈는데 밤마다 마치 레코드를 재생하듯 불러댄 탓에 삼천포 아가씨가 난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에는 나이트클럽과 포장마차가 불야성을 이루었고 노래 부르다 지루해지면 포장마차에서 아침을 맞는 일도 허다했다.

 

쥐치회
쥐치회

그때 찰거머리처럼 따라다녔던 처음 안주가 쥐치회였다. 귤 알맹이처럼 톡톡 터지듯 싱싱한 육즙을 뿜어내던 쥐치회는 연약한 새꼬시의 식감으로도 반할 만큼 인기가 좋아 곡주를 부르는 마력이 숨어 있었다. 그런 쥐치가 90년대 중반을 넘기며 자취를 감추더니 쥐포와 함께 명성도 시들어 지금은 귀한 몸값을 자랑하며 마니아들에게 기억의 보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도다리보다 쥐치회를 더 좋아한다. 추억의 눈꺼풀을 다 걷어내지 못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청춘의 가난한 주머니를 위로해 주었던 고마운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새조개

삼천포에서 만난 또 다른 경이로움은 새조개다. 이른 봄 직장 형님 초대로 처음 맛본 새조개는 용왕님이 먹는 신비한 음식 같았다. 새를 닮았다는 것은 한참을 지나서야 전해 들었지만 매혹적인 고동색 등살이 전해주는 쫄깃하면서도 야들야들한 식감의 레벨을 감히 평하기도 버거울 만큼 환상적이었다. 살짝 데쳐낸 새조개에 곰삭은 김치를 둘러치고 곡주 한 잔 곁들이는 풍경은 조선 진경산수화 속 선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개체수도 많지 않아 귀한 제철 음식으로 사랑받지만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삼천포를 기억하는 최애 음식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형님들

그러나 인연만큼 강력한 고리는 없을 것이다. 내게도 삼천포 사천을 기억하게 해준 고마운 지인이 있다. J형님은 우연히 일로 만나 산이라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친해지게 되었는데 꼿꼿하고 세심한 성품과는 달리 잔정이 넘치고 무엇보다 음식에 일가견이 있어 산행 때마다 산해진미를 손수 요리해내는 산상세프로 그 존재감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만날 때마다 이곳 토박이분들을 새롭게 소개해준 덕에 33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향 달처럼 훈훈한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식당에 가면 아직도 붙어 다니냐며 넌지시 부러운 눈빛으로 농을 건내주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J형님의 그 처음들을 되새기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용궁시장

나는 아직도 처음 투성이다. 그럴 때마다 33년 전 이곳에서 만난 처음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출발점에 선다. 물론 그 처음들은 세월 따라 모양도 맛도(변한 게 아니라) 달라졌지만 본질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더 귀해지고 더 그리워지고 아직도 간간이 당긴다. 막막한 세상 그래도 길 너머 길이 있듯 인연도 그 너머 또 새로운 인연이 이어지므로 외로울 게 없다. 나의 처음들이 그랬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처음일 때 내 처음처럼 오래 기억되고 추억이고 싶다. 삼천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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