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광포만愛 빠지다
글・사진 조영아
광포만을 아시나요
광포만을 삼천포 실안 옆에 있는 광포 바닷가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기사(‘하기야’의 경상도 사투리) 사천 구석구석을 제법 돌아다녔다는 나도 지난해 여름께 처음 광포만에 가봤으니까.
넓을 광(廣), 포구 포(浦), 광포(廣浦)만이다. 광포만은 곤양천 하구에 위치하고 있고, 곤양면 대진리와 서포면 조도리 사이에 펼쳐진 넓은 기수역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갯잔디 군락지이다. 경상남도 람사르 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포만에는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직면한 재두루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등을 비롯해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 소쩍새, 큰고니 등 103종의 새가 서식하고 있으며,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수달과 대추귀고둥 등과 희귀 염생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어 생태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사천시가 환경부에 요청한 광포만의 ‘국립공원 편입’은 올 상반기에 불발됐다. 다행인 것은 해양수산부가 광포만의 ‘습지보호지역 지정’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고, 해양생태 실태조사와 주민설명회를 거쳐 올해 안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할 계획을 밝혔다는 거다. 그 유명한 순천만 생태공원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30년이 걸렸고, 그 첫걸음이 ‘습지보호구역 지정’이었다고 하니, 이제 우리도 신발끈 단단히 고쳐 매고 긴 여정 떠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석문마을 뒷길을 따라 광포만으로
석문마을 앞에 다다르니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다소곳이 고개 숙인 벼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지 아이마냥 깔깔 웃으신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마을 뒷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니 드넓은 광포만이 눈앞에 펼쳐진다. 벌거벗은 갯벌이 민낯으로 객을 반긴다.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도 덩달아 춤춘다. 아아, 물때를 맞춰 아침 일찍 온 보람이 있네!
갈랫길(‘갈림길’의 평안도 사투리) 한가운데 주차를 하고, 먼저 왼쪽 방향으로 걸었다. KB인재니움 방향이다. 육지로 마실 나온 갯게(?) 한 마리가 낯선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몸을 한껏 움츠리고 멈추어 섰다. 도망갈 구멍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게지. 예민한 녀석들 놀래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도 소용이 없다. 스르륵, 스르륵, 한순간에 잽싸게 숨는다. 갯벌 위에 수두룩하게 보이는 붉은발 농게도 파놓은 구멍 속으로 들어는 가는데 크고 붉은 집게발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자세히 보면 바로 들통이 난다. 고 녀석, 참 신기하게도 생겼네! 모르고 보면 집게 한쪽이 떨어진 줄 알겠네!
다시 주차했던 곳으로 돌아와 이제는 오른쪽 방향으로 걷는다. 아까부터 왱하는 소리가 난다 했더니 방금 벌초를 끝낸 맨송맨송한 산소가 눈에 들어온다. 저 어르신 오늘, 자식 손주 얼굴 봐서 좋으시겠네. 칡꽃이며 햇도토리며 가을 전령들이 곳곳에서 눈짓을 한다. 무궁화꽃도 유난히 곱다.








제민마을에서 곤양천을 따라 광포만으로
차를 타고 제민마을로 내려왔다. 이제 곤양천 하구 제방을 따라 조도마을을 향해 걷는다. 기수역이라서 그런가, 곤양천에 물고기가 신기할 정도로 많다. 이리저리 헤엄치는 물고기떼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그중에는 어른 손바닥보다 큰 녀석들도 있었다. 간혹 예고도 없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녀석들을 조우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하늘엔 뭉게구름 잔치가 열렸다. 물고기떼 노니는 곤양천에도 뭉게구름이 내려와 얼른댄다. 청명한 하늘, 노랗게 익어가는 볏논, 불어오는 바람에 사그락대는 갈대 소리, 흑염소들의 평화로운 일상……, 사방이 온통 가을가을하다. 도보를 마무리하고, 광포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제방 위 쉼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쳇말로 멍때리기 딱 좋은 조건이다. 하늘멍, 바다멍, 논멍, 구름멍…….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광포만愛 빠지다?




[광포만 방문일 : 2023년 9월 10일]
※ 광포만에 관한 정보는 뉴스사천 관련 기사를 참조 또는 인용하였고, 그 외에는 개인적인 의견과 지식에 의존하여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