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단상(斷想)_내가 좋아하는 그곳 ⑤

사천 단상(斷想)_내가 좋아하는 그곳 ⑤

풀꽃 예찬

 

글・사진 조영아

 

 

사람들은 저마다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기대여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김춘추님의 시 <꽃>에서처럼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주고,
누군가는 나의 이름을 불러 주어서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를 갈망하는 존재들’이다.
– 글쓴이 생각 –

 

 

오랜만에 뜸벌산(장령산이라는 이름과 혼용하여 쓰임) 산책을 나섰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라 산행이라 하기도 뭣하다. 전에는 주말에 자주 다녔는데, 몇 년 외지로 주구장창 다니느라 동네 명소를 홀대한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토요일 아침 9시, 비 온 뒤라 그런지 바람이 조금 차다. 옷깃을 여미고, 사천향교 앞에서 출발한다. 뜸벌산 입구에 다다랐을 땐 찬 기운이 오히려 시원스레 느껴졌다. 흙냄새, 나무 냄새, 풀 냄새, 낙엽 냄새……, 조금이라도 좋은 냄새를 더 맡으려고 코를 연신 씰룩거린다.

얼마간 산길을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봉대산, 똑바로 가면 뜸벌산 정상인 체육공원이다. 봉대산 희망봉을 더 자주 가곤 했지만, 오늘은 체육공원 쪽을 선택한다. 공원 내 벚꽃은 지난 비에 모두 바닥에 내려앉았고, 나뭇가지에는 연둣빛 새순들이 앞다투어 돋아나고 있었다. 4월, 딱 요맘때 볼 수 있는 선물 같은 풍경이다. 여리여리한 연둣빛이 뿜어내는 강렬한 생명력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싱그럽고 따뜻하다.

쪼그만 풀꽃들의 소리 없는 인사가 반갑다. 풀꽃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정말 신비롭고 놀랍다. 그 빛깔이며 섬세한 모양새가 얼마나 특별하고, 세련되고, 예쁜지……, 그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풀꽃은, 누가 뭐라 하거나 말거나 제시간에 맞추어 피고 진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당당하다. 자라난 곳이 길가든, 무덤가든, 쓰레기장이든 원망하는 일도, 주눅이 드는 법도 없다. 그냥, 오롯이 자신으로 머문다. 이런 풀꽃을 보며 ‘호연지기’를 떠올렸다면 너무 나간 걸까? 산책하는 내내 지천에 늘린 풀꽃들을 보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왠지 그냥 풀꽃이라 싸잡아 부르는 것이 미안해서, 풀꽃 사진 몇 장을 찍어 검색해 보았다. 봄까치꽃 또는 큰개불알풀, 황새냉이, 흰제비꽃, 뽀리뱅이, 흰민들레, 무스카리, 덩이괭이밥……. 이름이 참 정답고 이쁜데, 오십 넘어 암기력이 현저히 떨어진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암기 불가 영역이다! 불현듯, 사람들이 제멋대로 지어놓은 이 이름들이 풀꽃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니, 의미니 하는 것들은 그저 사람들의 일일 뿐이지 않을까? 사진 위에 적어둔 꽃 이름을 모두 지웠다. 어떤 설명도, 수식어도 없이, 존재하는 이 모습 이대로 보고, 즐기고, 기뻐하리라! 이런들 저런들 풀꽃은 별로 상관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봐 줬으면 좋겠다 싶은 게 아닐까.

풀꽃에 정신이 팔려,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다. 한참을 더 걸어야 했지만, 일없다.

 

※ 개인적인 생각과 지식에 의존하여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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