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단상(斷想)_내가 좋아하는 그곳 ④
2017년 4월 22일, 늑도 유채꽃
글・사진 조영아
달콤하고, 짜릿하고, 때로는 벅차기까지 한 자유로움
마음이 동하면, 오롯이 나만을 위한 1일 연가(年暇, 연간 유급 휴가)를 쓰곤 한다. 그것도 즉흥적으로. (가족들에게 나의 휴가를 알리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비가 오는 날에는 조조부터 시작해 영화를 두세 편씩 보거나,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온종일 책을 읽으면서 시간이 멈춘 듯 느릿느릿 보낸다. 날씨가 좋은 날엔 걸으러 가는 걸 좋아하고, 가끔은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자영업자에서 직장인으로 포지션을 바꾼 지 12년, 조직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 머리가 복잡할 때, 중요한 사안을 정리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스멀스멀 차오를 때……, 능동적 ‘자기 돌봄’의 일환이라고 해 두자. 주말이나 공휴일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평일 휴가가 주는 달콤하고, 짜릿하고, 때로는 벅차기까지 한 자유로움이란! 오늘 나는, 그 자유로움을 당당하게 거머쥐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카르페 디엠’
출근을 하듯, 같은 시간에 집을 나왔다. 갓 내린 원두커피 향이 차 안 가득히 퍼지고, 오늘의 음악이 어우러진다. 출발하여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으레 평소 애청하는 팟캐스트(Pod cast)로 채널을 옮긴다. 오늘의 주제는 카잔차키스의 소설『그리스인 조르바』다. 실존이 어떻고, 자유가 어떻고, 현재적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소 난해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토론자 간 관점의 차이가 팽팽하다. 나는, 깊이 있는 통찰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토론 듣는 것을 좋아한다. 초대 손님으로 온 작가는 조르바의 삶을 한마디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집중하라)’이라 정의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했던 명대사, 바로 그 카르페 디엠! ‘나’라는 존재가 현재 머물고 있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삶이 가장 잘 사는 삶이고, 구도(求道)의 삶이라 역설한다. 글 한 자 모르는 자연인 조르바는 진정한 ‘Street Smarter’였고, 자유인이었다고. 아아 나도 눈앞에 있는 사물과 사람에 더 집중하며 살아야지, 아니 나는 조르바처럼 살기는 이미 틀렸어, 어어 진행자가 내 마음을 읽었나? 이러는 사이, 차는 늑도에 다다랐다.
2017년 4월 22일, 늑도 유채꽃
사실 늑도는 오늘 여정의 기착지다. 출발 전 휴대폰을 열었는데, 개인 SNS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늑도 유채꽃이었다. 새삼 궁금해서 늑도에 잠깐 들렀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살짝 실망스러웠다. 유채꽃이 아직 피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 모두 핀다고 해도 예전의 그 풍경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초양도에 사천바다케이블카 정류장과 아라마루 아쿠아리움이 생겼고, 최근에는 관람차까지 만드는 중이다. 주변에 화려한 볼거리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이제 유채꽃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 2017년 4월 22일, 아침 안개 자욱이 내려앉은 늑도 유채꽃을 추억한다. 몽환적 분위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본 유채꽃 중에 단연코 최고였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못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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