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단상(斷想)_내가 좋아하는 그곳 ③

사천 단상(斷想)_내가 좋아하는 그곳 ③
나의 봄은,

 

글・사진 조영아

 

쑥 사랑의 기원

가방을 대청마루에 던져 놓고 갔으니,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다.) 다닐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아직 겨울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초봄부터 날 궂은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쑥을 찾아서 온 들을 누비고 다녔다. 학교 가는 날에는 수업 마치기가 무섭게 달려갔고, 공휴일에는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한 옆집 아저씨가 밭에 나가시는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나갔다. 빨간 플라스틱 소쿠리와 커터 칼 하나 들고, ‘내가 좋아하는 그곳’으로 출근을 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나이에 비해 쑥을 꽤 잘 캤던 것 같다. 내가 캔 쑥을 본 동네 할머니들은 다들 칭찬 한마디씩 하셨다. 어린아이가 손끝이 야무지다고, 깨끗해서 따로 가릴 것이 없다고, 그리고 장에 내다팔아 보라고. 그때부터 쑥은 나의 쏠쏠한 용돈벌이가 되었다. 3백원도 받고, 운이 좋은 날에는 5백원도 받고.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라야 용돈 구경을 하던 시절, 쑥을 팔고 받은 동전을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뿌듯한 뭔가로 충만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도시에서 자취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쑥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후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일과 육아에 온 정신을 쏟으며 사는 동안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내 마음속 깊숙이 숨어있던 쑥 사랑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부할 수 없는 진한 그리움의 향수에 다시금 젖어 들었다.

 

나의 봄은,

이제 나의 봄은, 오롯이 쑥이다. 2월 말부터 해쑥 마중을 나간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축적된 나만의 아지트가 있다. 가끔씩은 하동 섬진강 변으로 원정을 나가기도 한다. 첫쑥은 국을 끓여 먹는다. 삼천포산 조갯살 듬뿍 넣고, 엄마가 농사지은 들깨 가루도 넉넉히 넣어서. 다음으로는 튀김을 해서 먹는다. 쑥만으로 하기도 하고, 이맘때 나오는 삼채 뿌리나 땅두릅을 곁들여 튀기기도 한다. 나만의 비법이라면, 밀이 아닌 쌀 튀김가루를 주로 쓴다는 것과 튀김옷을 최대한 얇게 입혀 원재료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는 데 있다. 3월 중순이 지나 쑥이 좀 크고 흔해지면 많은 양의 쑥을 캐서 단골 떡방앗간을 향한다. 쑥털털이를 하기 위해서다.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주셨던 쑥털털이의 식감과 맛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판매용보다는 쑥이 두 배나 많이 들어 있어 제법 맛나다. 작년 봄에는 2되씩, 3번이나 해서 지인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맛있는 추억을 선사하기도 했다.

 

벌써, 올해 쑥국과 튀김은 맛보았다. 소량이라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캐서 제일 먼저, 사무실 선생님들에게 맛을 보여 줄 요량이다. 벌써부터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젠 거의 봄맞이 연례행사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신입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주의자에 가깝고 매사에 진지 일색이라 별로 인기가 있지는 않은데, 맛있는 걸 해 줄 때는 박수 세례를 종종 받는다. 새해 들어 사업기획안 검토하면서 지적질을 좀 했는데, 이제 슬슬 만회를 해 볼까? 3월, 쑥향 가득한 나의 봄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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