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길, 보길, 쉬길
[사천의 길&숲] 龍氣잇는 와룡길 ! 사천Up-Road
글⦁사진 이용호
용두에 상사바위를 꽂아 두고 용의 목덜미를 도암재로 유연하게 엮은 채 견고하고 역동적인 등뼈를 새섬바위 암릉에 굳건히 심어놓고 민재봉의 풍만하고도 튼실한 하체를 동력삼아 용강 들판으로 긴 꼬리를 뻗어 내린 와룡산은 사천의 기운을 우주로 이어주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龍氣잇는 사천Up-Road요, 사주 천년의 기운을 품고 있는 명산이다.

龍氣잇는 와룡산! 사천 Up-Road를 걷다
천인단애 허공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른다. 고단한 바람과 나란히 눕는다. 파란 하늘이 우물처럼 깊다. 청량수가 쏟아진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와룡의 가슴에 묻혀 몽환의 뜰을 훔친다. 얼마나 졸았을까? 민재봉이 벌떡 일어나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놀라 깨어보니 바람 혼자 상사바위를 찾아 나섰다. 눈과 귀와 마음까지 배낭에 담아 길 위에 실어 보낸다.
도암재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천의를 걸친 듯 유려한 옷자락이 용솟음친다. 상사바위다. 와룡의 머리를 상징하는 이 암릉에는 천왕봉이 있다. 공교롭게도 지리산 상봉과 이름이 같다. 상사바위의 옹골진 자태를 감안한다면 용의 기운이 지리의 신령과 맥을 잇고 있으리란 추측은 무리가 아니다. 이 바위 자락에서 벽을 타며 승천의 기운을 만끽한 젊은이들이 저 히말라야 빙벽을 정복한 게 우연이 아니듯 와룡산에는 사천의 얼과 기상이 서린 생명의 기운이 살아 쉼쉬고 있다.


한국의 명산이자 사천의 모산에 안기다
내내 한려수도 그림 같은 풍광을 알현하며 바다 위를 거니는 듯 몽환의 경지로 함몰되는 와룡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 중 으뜸이요 사천 사람들의 숨과 쉼이 터를 이루고 있는 모산이다. 남양과 와룡골, 진분계, 백천골 등 다양하고도 아기자기한 등로가 열려 있으며 안점산 봉수대를 깃점으로 하늘먼당을 넘어 민재봉까지 약9km에 이르는 종주 산줄기는 이 산에 깃든 사천 사람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역동의 길이기도 하다.
상사바위를 휘돌고 온 배낭을 둘러메고 다시 오른다. 거대한 암벽 비탈로 잔도가 가슴을 쪼갠다. 까마귀들의 음침한 선회가 아찔함을 더해주는 잔도는 가파른 암벽을 부여잡고 60여 미터 단애를 올라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간담이 서늘해 올 무렵 고개를 돌리니 사천의 바다가 한폭의 풍경화로 품에 안긴다. 은빛으로 일렁이는 사천만과 그 너머 서포의 섬들이 마치 해양 정원을 옮겨 놓은 듯 이국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옹기종기 모여든 마을들이 삶이라는 거대한 숲을 이루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천 사람들의 일상이 아름드리 고목으로 자라듯 와룡산 길에도 세월의 편린이 너덜을 이루며 터벅터벅 견고한 훈장을 다지고 있다.


새섬바위가 빚어놓은 사천의 숲과 길에 물들다
한숨 이고 올라서니 거대한 성벽을 만난다. 눈길조차 내리기 무서운 거벽을 따라 새섬바위까지 만리장성을 축소해 놓은 듯 용의 등줄이 꿈틀거린다. 용의 비늘 같은 바위들이 탈피를 계속하고 있는 이 암릉은 그 옛날 바다였거나 용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을 것이다. 뾰족 튀어나온 한 평 남짓 섬바위에 새들이 앉았다가 천지가 개벽하고 산과 바다가 객기를 부렸을 때 와룡은 산이 되었고 섬바위는 새들의 고향으로 남았다고 한다.
새섬바위에 앉아 천지를 만난다. 와룡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축축한 겨드랑이를 간지럽힌다. 어깨가 펴지고 새가 된 듯 허공 속으로 유영한다. 새롭게 조성된 시청과 3번 국도를 따라 사천읍까지 융단 같은 들판이 사천만의 양분을 마시며 풍요로운 길과 숲을 이루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찾아온 서포에도 옛 이야기 숲이 예쁘게 내려앉아 동화의 나무들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다. 발아래 백천과 와룡골에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숲을 이루며 사천의 새로운 관광로드를 형성하고 있다. 모두 와룡의 골과 능이 베풀어낸 기운의 증좌다.


일망무제 민재봉에서 사천의 속내를 만나다
이제 준수한 등줄을 따라 와룡의 허리를 다지러 간다. 이곳은 철쭉과 야생화와 억새가 사시사철 군무를 연출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한려수도 짭조름한 바람은 와룡의 등줄기를 간지럽히고 맛깔스러운 양념으로 변하여 사천의 너른 숲을 골고루 키운다. 느린 걸음을 격려하며 눈과 귀를 좌우로 베풀어야한다. 해무가 넘어가는 이 능선의 아름다움은 한려수도를 빼닮았다. 빨갛게 철쭉이 지천으로 뒤덮인 봄날의 치장은 얼마나 황홀한가. 억새물결 일렁이는 가을 와룡은 또 얼마나 수수한가.
마지막 오름길이 푸근해진다. 사천의 기운이 모인 민재봉은 주봉이자 용의 기운을 키워낸 허리다. 탁 트인 정상은 사천의 앙꼬 같은 숲과 맛깔스런 길을 살피고 보듬어주는 고샅이요 터전이다. 이 길 위에 서면 사천을 품은 듯 당당함이 밀려온다. 사천 사람들의 속내를 다 알 듯 따스함이 안겨온다. 등 뒤로 이구와 흥무산 줄기가 형제처럼 다정하다. 능화 고자치를 넘던 현종 부자의 애틋한 사연이 굽이굽이 고갯길 따라 정동의 숲으로 스며든다. 그 길은 다시 사천강 생명 따라 무지개 해안길을 낳고 남일대까지 긴 연대의 끈을 이루며 청량한 용의 기운을 숙성시키고 있다. 와룡산이 꿈틀거린다. 龍氣 잇는 사천 사람들이 반짝거린다. 삶도 길도 업로드 되는 와룡산길은 사천의 정신이요 사천인들의 희망숲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