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길, 보길, 쉬길
– 사천의 길&숲 이야기
감칠맛 우거진 사천의 길과 숲 이야기
사천에 정을 묻은 지도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그때는 삼천포였고 지금은 사천인 것 빼고는 변한 게 없다. 적어도 인심만은 그렇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길과 숲은 예전 그대로다. 아니 어쩌면 더 농후해졌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심의 깊이와 넓이가 더 감칠맛 나게 우거졌다는 의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이 사천의 길과 숲에는 있다.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짭조름한 밑간 같은 사천 길
사천의 길은 짭조름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사천으로 진입하면 여느 길과 다르게 느껴진다. 싱크홀에 빨려 들어갈 듯 막다른 문을 향해 질주하는 진삼 국도는 노산공원 끄트머리까지 간간하게 마음을 적신다. 언뜻 사천만이 길러 올린 바다 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태평양의 발원지를 꿈꾸는 삼천포 항구의 끈기가 자손대대 삶의 밑간에 짭조름하게 베여 있기 때문이다. 반도의 뭍 최남단인 삼천포는 한때 이 나라 어획의 보고였으며 특히 쥐치와 쥐치포의 원산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왕국이었음을 상기할 때 지난한 세월 뭍으로 퍼 올린 이곳 사람들의 땀과 생존의 몸부림은 그대로가 역사요 바다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천의 길에는 맛있는 삶의 소금이 깔려 있다. 개미(깊은 맛과 감칠맛이란 뜻의 사투리) 있고 짭조름한 일상이 길 위에 살고 있다.

그리움이 채워지는 사수 천년길
그리움은 사천의 길에 유독 많이 베여 있다. 그리움은 보고 싶은 마음이다. 보고 싶다는 것은 채움이고 그것은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고려 8대 임금인 현종과 그 아비 왕욱(안종)의 애틋한 정이 서려있는 사천은 풍패지향의 기운이 고금에 이어진 그리움의 고장이다. 고자치를 넘나들며 애끓던 길 위에 한 줌 한 줌 아들과 아비의 마음을 채워 넣은 세월이 사수의 자랑스러운 천년 역사가 되었고 후대의 활주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축제는 물론이거니와 사천의 모든 길에는 맛있는 그리움들이 사연처럼 맺혀 풍요로운 과수원을 이루고 있다. 그리움의 핵이 열정이라면 실안 노을은 또 어떤가! 와룡의 여의주가 담금질하는 한려수도 사천 바다는 마치 고립무원의 섬이었던 사천을 웅비하는 열정의 용광로로 매일매일 끓이고 있다. 국태민안을 소망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숱한 사천 길에도 간절한 그리움이 녹아 있다. 그리움이 많은 고장은 정이 간다. 정은 보고 듣고 걷고 느끼고 맛보기를 권한다. 천년의 그리움이 소담스럽게 서려 있는 사천에는 그리움을 채워주는 길이 있다. 새로운 그리움을 엮어주는 길이 많다.

끌리는 표정이 한상 가득한 사천 길
표정으로 치자면 사천의 길은 다채롭다. 시인의 숨결을 타고 아득히 불어오는 천년의 바람 길이 사천에는 있다. 그 길은 시처럼 온화하고 행복한 표정을 담고 있다. 때론 땡추처럼 톡 쏘는 맛으로 사천 사람들을 조각해 준다. 무지개가 새들어 사는 사천만 해안 길에는 일곱 색깔이 빚어내는 천차만별의 표정들이 공존해 산다. 전어 속에도 갯벌에도 풍차에도 바람개비에도 풋풋하면서도 활기찬 얼굴들이 사천의 표정을 엮어내고 있다. 표정은 사람의 마음이고 그것은 끌림으로 귀결된다. 회에도 싱싱한 파도의 표정이 있고 다솔사 숲에도, 와룡산 암릉 길에도 한상 가득 사천의 맛있는 풍경이 차려져 있다. 사천에는 길마다 끄는 힘이 있다.

걷길 보길 쉬길 위한 사천의 길 이야기 연재
길은 숲으로 이어지고 숲은 길을 낳는다. 짭조름하게 그리운 표정들이 사천의 숲과 길에 살고 있다. 맛있는 것들이 그곳에 있다. 걷길, 두발로 걷고 느낌으로 걷고 그래서 사천의 그리움을 걷어 가면 좋겠다. 보길, 눈으로 보고 입으로 보고 그래서 사천의 짭조름한 맛을 세상에 보고해 주면 좋겠다. 쉬길, 그 길 위에서 수고한 숨을 고르고 당신의 쉼을 잠시 누이는, 그래서 사천의 표정을 닮은 끌림 있는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사천에서 걷길 보길 쉬길 위해 길과 숲과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