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의 길&숲] 용궁가는 맛있는 길-사천 코끼리길

걷길,보길,쉬길
용궁가는 맛있는 길사천 코끼리길
글⦁사진 이용호

 

코끼리 타고 떠나는 사천의 심장, 삼천포 선창길

90년대 초반 삼천포는 아직 어획고가 한창이었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항구 일대는 만선이 쏟아내는 해산물들로 연일 불야성을 이루었다. 나는 밤마다 은파다방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선창의 파시를 구경하곤 했었는데 그때 팔딱거리며 사정없이 튀어 오르던 생선을 보며 태평양의 발원이 이곳 사람들의 핏속에 숨 쉬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30여년 타향살이 길과 동행하면서 사천을 대표하는 심장으로 요동치고 있다. 억척같은 발버둥들이 다져놓은 길 위에 삶의 밑간들이 질펀하게 배인 선창길에는 짭조름한 사천의 맛과 멋이 명품처럼 박혀 있다.

긴 바다를 품고 사는 사천에는 토끼와 거북이와 노을이 일궈놓은 그리움과 살가운 길들이 유독 많다. 그 중 코끼리길로 명명된 남쪽 해안길은 남일대 해수욕장에서 창선-삼천포대교 공원까지(약11Km) 사천의 수산업과 관광벨트를 품고 있는 생활밀착형 코스로 용궁수산시장과  수협 어판장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전어와 바람이 빚어 놓은 팔포 노산길

삼천포아가씨의 그리움이 흐르는 노산해안길

젊어진다는 “10년 다리”를 건너면 사천의 관광 랜드마크인 팔포다. 목섬과 노산공원을 좌우로 거느린 팔포는 가슴깊이 바다를 묻고 사는 삶터다. 올망졸망 들어선 횟집과 숙박시설은 매년 축제를 열며 전어의 바닷길을 이어오고 있다. 밤이면 알록달록 오색등을 밝히고 수평선을 재단하는 도마소리에 한상 가득 사천의 맛이 차려진다. 한때 이 바다는 부산과 여수를 오가는 연안 여객선의 고동소리가 그림처럼 피어 났었다. 사무친 그리움이 삼천포아가씨 노랫말에 실려 노산의 바다를 촉촉이 적시고 있다. 천년의 바람은 박재삼 시인의 주옥같은 시어로 버무려져 항구의 비린내를 향기로운 양념으로 치환해 놓았다.

 

태평양이 통째로 들어앉은 용궁수산시장길

태평양이 통째로 들어앉은 삼천포용궁수산시장
바다를 매립해 만든 사천의 관광랜드마크 팔포음식특화단지

노산공원 시인의 숲을 건너 농익은 골목을 빠져 나오면 엄마 품 같은 삼천포 항구가 두 팔 벌려 안아준다. 어깨를 나누며 이웃처럼 살고 있는 고깃배들은 쉼 없이 태평양의 비옥한 바닷길을 싣고와 사천의 어시장을 살갑게 포장하고 있다. 비릿한 갯내음 배인 이 길에는 폭풍우 같은 바다를 은파로 다독이며 자식과 가족을 건사한 뱃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짭조름한 인정이 가로등처럼 살갑게 내리쬐고 있다. 어느 가게인들 들어서서 활어 한 접시 썰어 선창가 바람의자에 앉아 먹으면 소곤소곤 사천의 이야기가 코끼리코에서 양념처럼 흘러나올 것만 같다.

쥐치의 영웅담도 듣고 쥐포의 찰진 연애 맛도 느껴 보면서 어시장 골목을 누비는 맛은 색다른 체험이다. 활어를 써는 아주머니의 힘찬 칼질과 고기 상자를 끌고 달리는 거친 숨소리가 바다 식구들과 공존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 삼천포용궁수산시장은 그래서 명작품이다. 과속도 신호위반도 용납하지 않는다. 걸음을 아끼고 눈과 귀와 촉감의 속도를 줄여야 하는 곳이다.

 

새벽을 닮은 어부들의 만선장터, 수협어판장

만선의 꿈이 살아 숨쉬는 수협어판장

소금기 가득한 삼천포 항구의 골목은 새우구이처럼 고소하다. 꼬마 게들과 고둥, 톳, 미역까지 낮은 곳에서 용궁의 길목을 빛내주는 생명들이 살고 있다. 쿵쾅거리는 심해의 심장소리가 궁금해질 무렵 묵직한 어판장 사이로 펄떡이는 생명들이 솟구친다. 수협어판장이다. 태평양을 토해내는 만선의 몸부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체험 삶의 현장 한복판에 서서 꿈틀거리는 전율을 삼킨다. 항구의 숨소리가 새벽을 닮았고 어부들의 몸짓이 노을만큼 아름다운 사천의 어판장에는 그래서 짜지도 달지도 않은 사천사람들의 개미가 살아 있다.

 

숙성된 선물 한 아름 안고 일상 속으로

길들이 쉬어가는 군영숲 터미널

한껏 부풀어진 어깨를 둘레 메고 숲으로 향한다. 신수도로 떠나는 뱃전에 살가운 발걸음 하나 선물하고 바람이 민박하는 청널 풍차에게는 들썩인 어깨 한 축 내어준다. 등대가 안내하는 바닷길을 따라 대방굴항에 코끼리를 내려놓고 나의 길은 군영 숲 바람 터미널에 맡긴다. 은파가 일렁이는 바닷가 삶의 흔적을 따라 사천의 길 맛이 짭조름하게 숙성되어 있다. 불야성 같은 사천의 열정이 살고 있다.

 

사천 코끼리길(약11Km) 개략도(출처 : 사천시 공식 관광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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