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남동 블루스 – 영농부산물, 어떻게 하나요?

“야야~ 야야~.”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을 보니 뒷집 어르신이 담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미시며 노랑 주스 통을 흔들어 보이셨다. 현관을 나서 뒤꼍으로 달려가는 그 몇 초 사이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7년 전 이곳으로 이사한 그해, 호박 넝쿨이 우리 집 담을 넘어 미안하다며 호박 한 덩이 주신 이후론 왕래가 없던 터라 살짝 긴장되기도 했다.

담 넘어 망고 맛 하나, 감귤 맛 하나의 노랑 주스 통을 건네셨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쉬~”

검지를 손에 대시며 조용히 하라신다.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요거 10월까지 유통기한인데 애들하고 먹어.”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쉬!”

옆집을 곁눈질하신다. 아마도 옆집 어르신이 아시면 서운해하실까 봐 그러시나 보다.

“내가 고마워서 준다. 자주 불태우고 하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냄새도 날낀데…”
‘아! 이건 뭐지? 왠지 말린 기분인데?’

속으로 말을 삼키며

“네~~”

90도 인사로 마무리하곤 집안으로 후다닥 들어왔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어르신과 눈이 마주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소각

요즘 들판 근처 주택가에선 ‘불법 소각’하면 과태료를 문다는 현수막을 제법 볼 수 있다. 불법 소각의 피해자에게만 유독 눈에 띌 수도 있겠지만 시골집에서의 생활이 마냥 청정한 공기를 제공하진 않는다. 철마다 밭에 뿌리는 퇴비는 차라리 향기롭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것보다 더 괴로운 건 농약 냄새고 그것보다 더 고약한 건 바로 ‘불법 소각’으로 인한 매연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집에 머무르지 않는 날은 빨래를 밖에 널 수가 없다. 그을음도 문제지만 훈제 향이 옷에 베어져선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마치 돼지고기 한 근 숯불구이 해 먹은 향이 진동한다.

집마다 텃밭을 끼고 있으니 철이 지날 때면 생기는 고춧대, 깻대 등이 수북이 쌓여 처치 곤란이다. 일평생 농사만 지으시며 당연히 소각을 해오셨던지라 종량제 봉투나 폐기물 처리용 마대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일 거다. 사실은 나도 종량제 봉투값이 아까워 가지 대와 토마토 대를 말려서 태워본 적도 있기에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마냥 그분들을 욕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앞집, 옆집, 뒷집에서 마구잡이로 태우는 통에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뭔가 해결책은 없을까?

인천 남구청의 영농부산물 무상수거 신청 안내 포스터

인터넷에서 ‘불법 소각’으로 검색을 해보니 인천시 남동구청의 블로그에 포스팅된 글이 눈에 들어왔다. (블로그 보기) 영농부산물을 태우지 말고 무상 수거해 준다는 글이었다. 햇볕에 잘 말린 영농부산물을 구청이나 행정복지센터에 수거 신청을 하면 배출 예정일에 수거해간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여러 지역에서는 미세먼지도 줄이고, 토양 내 유기물 함량을 늘리기 위해 농작물 수확 후 부산물을 잘게 부순 뒤 퇴비로 사용하도록 권장하며 이를 위한 파쇄기 지원 사업을 하기도 했다. 사천시청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환경사업소에 농업용 폐비닐 및 농약 빈 병 수거 관련 업무는 보이는데 영농부산물에 관련된 업무는 볼 수가 없었다.

인천남구청블로그

 

 

 

어르신께 주스 두통을 받은 지 이틀 뒤. 마침 텃밭에 나오신 어르신을 보곤 김 선물세트 하나 들고는 담으로 전해주며 추석 인사를 대신했다. 실은 직접 찾아뵙고 드려야 하는 게 맞지만, 동네를 가로질러 가야 하니 이웃 어르신들 눈치도 보여 버릇없어 보이지만 안전한 방법을 선택해 선물을 건넸다. 텃밭 언저리에 고춧대가 널브러져 햇빛에 말려지고 있었다.

“어르신! 저런 고춧대들은 시에서 안 가져가나요? 다른 지역에는 신고하면 가져가는 곳도 있던데요?
“여기는 촌이라서 그런가? 안 가져간다.”
“그래요? 시에서 파쇄기도 빌려주고 갈아진 거로 거름도 한다는데요.”
“그래? 여기는 그런 거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태우고 한다 아이가. 촌에는 다 태우고 그리한다.”
“네~. 명절 잘 보내세요.”

시골살이가 좀 더 쾌적한 생활 환경이 될 수 있게 어르신들의 의식 변화와 행정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불법 소각 시 과태료를 문다는 현수막보단 ‘영농부산물 무상수거 · 영농 파쇄기 무상지원’ 현수막이 더 많아지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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