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는 길

글‧사진 김도숙

 

길 위에는 삶이 있다. 무심코 걷다 만난 산책길에서 뭇생명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휴일 늦은 아침, 초가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내가 즐겨 찾는 들길을 따라 걸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딱딱한 길 한쪽으로는 벼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고, 다른 한쪽 길가에는 야생화와 들풀들이 눈에 띄었다. 보랏빛 작은 꽃이 제비꽃인가 궁금하여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았다. 달개비꽃 혹은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앙증맞은 꽃이 들길을 수놓고 있었다.

 

노란 양지꽃, 금불초, 쇠서나물에 개망초, 물봉선, 나팔꽃, 왕고들빼기, 분홍빛 덩굴강낭콩꽃, 꽃향유, 배초향, 둥근잎유홍초, 까마중, 병솔나무 그리고 강아지풀과 억새풀까지 시멘트로 덮인 사이 흙을 뚫고 자기만의 빛깔로 삶을 수놓고 있었다. 길지 않은 길에서 만난 야생화의 손길에 이끌려 한참을 보느라 시간이 훌쩍 간 줄도 몰랐다.

고구마 줄기에 달린 고구마, 호박꽃과 호박잎, 음나무, 감나무도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비바람과 따가운 햇빛 속에 영글어 가는 알곡처럼 무심히 지나쳤던 길 위에는 또 다른 숱한 생명들이 자라고 있었다.

벼들 사이로 한 마리 백로가 앉았다 인기척에 우아한 날개짓을 하였고, 검은 나비는 야생화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논밭 뒤로 원두막이 있고, 작은 암자도 보인다.

금구다리를 지나면 산길로 이어지지만 아침도 거른 채 나선 산책길이라 뒤돌아 섰다. 아파트 주변 공터를 놀리지 않고 푸성귀를 심어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 동네가 온통 초록빛이다.

 

해질 무렵에는 바다를 보러 갔다. 산과 들을 보았으니 바다를 봐야지.

바다로 이어지는 샛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도달하는 사천만. 거북선 최초 출전지라는 푯말을 보았다.

 

부잔교 위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몸을 맡긴다. 다리가 출렁거리는 것을 느낀다. 부잔교 끄트머리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젊은 아낙이 아이들과 걸어오더니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니 동상인 줄 알았다고 말을 건넨다. 움직임 없는 고요함이 때론 필요할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얼마나 많이 흔들리며 살아왔던가!

노을을 품은 바다를 보면 언젠가 돌아갈 날을 생각하게 된다. 언제 떠나도 될 정리를 하고 사는가?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내가 만나는 길에서 나는 삶의 경외심과 물아일체를 배운다. 그래서 오늘도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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