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 어디서 많이? 코에 베어든 좋은 내

여러분은 길을 가다 어떤 냄새에 멈추어 서서 향수를 떠 올려 본 적 있으신지요?

연탄불 알루미늄 솥에 눌린 보리와 쌀을 적당히 섞어서 밥이 될 무렵 뜸 들일 때의 그 고소함이 내게는 늘 추억의 향기로 머문답니다.

할머니의 고된 시집살이를 떠나 아이 다섯을 데리고 제금을 나온 엄마와 아버지, 중앙시장 입구 인성의원 뒤편 쌀집 맞은 골목 이층집에 세 들어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밥하는 내음은 시장기를 가뜩 부추겼고 맡기만 해도 행복한 미소가 절로 번졌던 기억에 사로잡힙니다.

어쩌다 그 비슷한 냄새가 코에 드는 날은 예전 집 창호지 사이로 햇살이 두텁게 들어 아침을 열 때 연탄 화덕 위 칙칙 보글보글 대던 솥과 함께 그때가 환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이사 와서 엄마는 배속 머리 한번 자르고 내내 길어왔던 나의 머리카락을 싹둑 단발로 잘라주셨습니다. 또래의 아이들의 찰랑거리는 단발이 늘 부러웠던 나는 골목에서 빼 꼼 내다보며 누군가에게라도 보이려 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세 살 터울 남동생이랑 과자 뺏기지 않으려고 달리다가 이층 계단에서 부웅~ 수도가 있는 1층에 시멘트 턱에 콧등이 찢어져 근처 인성의원에 가서 세 바늘을 꿰맨 자국은 아직도 선명히 내 얼굴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의 거짓이 진실처럼 가족에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밀어서…….라고

집안의 누구라도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동생을 나무라는 친인척들….. 그저 예쁘고 여리게만 보는 어른들에게 어리광만 부렸던지 철이 너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십 무렵에야 동생에게 미안했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모두가 어른이 된 후라서 잘잘못은 크게 따지진 않았지만 동생은 후련해 했었습니다. 아니라고 해도 아무도 안 믿더라고!!!!!

벌을 받아서 일까요? 무수한 잔병치레를 했던 아홉 살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어린 시절 동생의 밤톨 같았던 기억도 여전하고요……

눈다리 깨를 달고 살았던 어린 시절, 뻑 하면 동네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났었지요. 누군가는 팔을 잡고 누군가는 다리를 잡고 엄마는 내 배 위에 앉아 나의 눈다리 깨를 짜내고 빽~~빽~~

그렇게 많이 자주 짜 낸 탓인지 나의 쌍꺼풀을 사람들은 성형일 거라 추측하곤 했었습니다.

아, 눈다리 깨가 나려면 발바닥에 ‘천 평’이라고 쓰면 금세 멈추는 것 같았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 어린 손바닥만 돌멩이에 그 속눈썹을 뽑아 올려두고 집을 짓듯 몇 개 돌을 붙여 놓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돌을 차고 가면 그 사람에게 옮겨간다고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숨어서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그 사람이 차고 가면 마치 옮겨가서 다행이라며 활짝 웃었던……. 무엇이 옳고 그런지도 잘 몰랐던 어리광쟁이 시절 다들 겪으셨겠지요?

오래전 초등 동창회가 활성화되고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의 옛일을 그려보는 몇 구절 적었던 것을 옮겨 봅니다.

하늘은 높고 맑았지
우린 아주 작은 아이들이었어
까만 눈망울엔 장난기와 웃음
세상 모든 것 가득 담겨도
무거운 줄 모르는 그런 꼬맹이들이었지

우리 선생님은 하늘이셔서
우리 할머니보다 더 크고
세상 제일이셨더랬지

어느 날인가부터
학교 운동장이 작아져 버렸고
팔포 샛강 가득 찼던 통나무가 사라지고
제재소의 나무 켜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
구름다리 위에서 다이빙하던
아이들 웃음소리가 멎고
바다에는 등대 몇 개와 방파제가 세워지고
구불구불 한내엔 다리 몇 개가 더 생겼지

우리들
세상 넓게 나아가 살고 있던 날
이제는 그리움이 쌓인 학교 운동장
친구가 찾아주는 친구의 까만 눈동자들
오십을 목전에 두고
니 우찌사네? 니는 우찌 지냈노?
학교 탱자나무 울타리의 개구멍도 나누고
말뚝 박기 딱지랑 구슬치기
두근두근 서리꽃도 피어나고
니랑 나랑 소꿉놀이하던 마당
웃음꽃도 피어나고
그 눈빛 마주칠 때마다 등짝 절로 토닥거리네

자 이제부터 함께 가는 거야
실안 노을 한결같고
지릿한 갯내음 여전하고
포구의 이른 아침
부지런한 뱃고동 변함없는
이곳 삼천포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