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걷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용현에는 산과 들과 바다가 어우러져 있어 풍요로운 곳이다. 삼천포 사람인 내가 삼천포와 사천의 중간 지점인 이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용현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식전이거나 식후에 마실로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용현 들녘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어 좋다.
또, 작은 마을 좁은 골목길 따라 용현 바닷가에 이르는 길도 고즈넉하면서 탁 트인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오래된 돌담이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말해 주고, 갯벌과 물이 왕래하며 드넓은 바다를 이루는 바닷가에 이르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금문마을 골목길에서 만난 푸른 담쟁이넝쿨은 기어오를 수 있는 곳은 다 점령하여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에 싱싱한 생명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메말랐던 대지를 적시는 봄비 내리던 날
금문 마을을 지나 돌담이 아직 남아 있는 오래된 골목길에는
겨우내 말라 비틀어져 도무지 되살아날 것 같지 않던 담쟁이 줄기에서
초록의 무성한 이파리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골목을 점령하고 있었다.
사람이 떠난 폐가이든,
사람이 사는 집 담벼락이든
가리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담쟁이넝쿨은 푸르게 푸르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생명력이란 저런 것이구나!
죽음에서 부활을 목격하는 순간이다.
가슴에 피멍 지니고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에 휘청거리다가
마침내 제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담쟁이는
삶에 대한 경외심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상처를 삭히고 삭혀 마침내 새 살이 돋아나을 때를 기다리라고.
생의 의지는 그렇게 쉽게 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담쟁이는 푸른 희망의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담쟁이넝쿨이 일깨워주는 생명력을 보고 다시 길을 걸었다.
논두렁밭두렁에 봄이 되면 되살아나는 야생화들이 놀랍다. 엉겅퀴와 유사한 지칭개, 노랑 개갓냉이, 보랏빛 자운영, 진분홍 등갈퀴나물꽃들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때가 되면 피고 있었다.우리도 야생화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제각각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는지…….
사람만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거나 알아주기를 바라며 헛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닐는지?
연노랗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진다.
드디어 용현 바닷가에 다다랐다.
무지개빛 해안도로 아래 새로 생긴 조형물이 눈에 들어 온다.
갯벌이 있어 생명을 키우는 사천만!
갯벌 속에는 온갖 생명체들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산도 들도 바다도, 나무도 푸름으로 찬란한 오월이다.
우리도 날마다 새롭게 부활하는 봄날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