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잇다 사람을 담다 – “잇담”
천년의 바람이 민박하는 노산공원

음악다방 인기였던 삼천포 랜드마크
서울 남산타워에 버금가는 랜드마크가 노산공원에 있었다. 성냥통처럼 생긴 팔각정에는 음악다방이 성업 중이어서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울창한 송림 사이로 짭조름한 해풍이 불어와 솔방울도 맛이 들었고 밤새 불야성을 이루었던 선창도 젓갈처럼 감칠맛 나게 곰삭는 통에 천년은 창창하겠다는 말이 농은 아니었다.
바람 한 됫박 퍼가던 삶의 샘터
지금은 자취를 감춘 충혼탑에 모여앉아 백일장 치루며 시심을 키웠던 조무래기들은 어엿한 문학도가 되었을 것이고 물질하며 해산물 팔던 팔포의 어매들은 또 어디서 한 생을 건사하고 계실지 아련해지는 노산공원은 어판장 비린내까지 모여들어 바람 한 됫박씩 퍼가던 삼천포의 샘터였다.
이별과 만남 교차하던 생의 격전지
그 시절(80~90년대) 주병선의 칠갑산이 전국을 흔들 때 나는 평생을 살지도 몰랐을 삼천포까지 천리를 달려와 생을 부어놓고 팔포 너럭바위에 앉아 밤마다 칠갑산을 부르며 천년 바람의 동네에 전입신고를 하고 말았다. 지금은 끊긴 부산과 여수를 오가던 엔젤호 경쾌한 뱃고동 여운 위로 은방울 자매의 불후의 명곡 삼천포아가씨가 흘러나오고 치열했던 왜란의 소용돌이를 말없이 호령하는 충무공 동상이 의연하게 지켜주고 있는 사천의 관광명소이자 나의 최애 명상 맛집으로 사랑받고 있다.
삼천포로 빠진 행운의 내 고향
시집 한권 들고 박재삼 시인 곁에 앉는다. 바람은 천년을 건너 왔지만 하루도 지치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가지런하다. 그럼에도 세상은 변했다고 말하지만 천 년 전 그 바람을 닮은 항구와 뱃사람들은 아직도 노산의 뿌리를 밟고 산다. 파닥파닥 물빛 좋은 용궁어시장을 보면 안다. 그래서 천년 바람의 동네 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행운이 아니다. 30여년 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