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포와 빚은 30년 인연

삼천포쥐포

초딩 입맛 사로잡은 쥐포와의 30년 인연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을 간 날이었다. 관광버스가 귀하던 시절, 시외버스를 겨우 빌려 타고 비포장 국도를 4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곳은 경주였다. 박물관을 보고 나오는데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막만하게 노릇노릇 구워 파는 주전부리였는데 그게 쥐포와의 첫 만남이었다. 달달하면서도 쫄깃한 살점이 입 안 가득 녹아드는 게 세상에서 처음 본 맛의 황홀경에 매료되어 3일치 용돈의 절반을 쥐포에 투자한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91년 직장을 따라 사천(당시 삼천포)으로 오게 되었는데, 아뿔싸! 그 쥐포를 다시 만날 줄이야. 당시 항구와 집집마다 쥐치를 손질하느라 분주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밤낮으로 쥐포와 전쟁을 벌일 정도였다. 아이들 공부는 물론 생계까지 쥐포는 독보적 존재로 그 위상과 명성이 대단했었다. 그때 나는 하루에 한번은 쥐포를 구워 먹을 만큼 애정이 남달랐고 지인들로부터 쥐포 선물 공세를 받아 주느라 애를 먹은 적도 많았다. 그 후유증으로 아직도 쥐포 홍보에 열정적이며 쥐포 없이는 맥주를 마시지 않을 만큼 마니아가 되었다.

 

여인들의 애환 깃든 사천 쥐포의 부활 기대

그런 쥐치 풍어기가 90년대 중반쯤 시들기 시작했다. 환경변화인지 어족자원의 고갈인지는 모르겠으나 급격한 어획감소로 쥐포 가공 산업도 덩달아 기울면서 쥐포의 명성도 지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쥐치회도 비씨고 쥐포 손질하던 아낙들의 풍경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지만 몇몇 사천 쥐포가 생산되고 아직도 쥐포는 사천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다행스럽다.

쥐포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간식의 대명사다. 도톰한 쥐치 속살에 스민 간간한 맛은 손으로 쭉쭉 찢어 먹어야 진가를 발휘한다. 요즘은 조미하지 않은 담백하고 고소한 본연의 맛을 살린 알포가 더 인기를 끌고 있다. 가족을 건사하고 지역 경제를 책임졌던 여인들의 척박하고도 진솔한 삶의 흔적들이 녹아 있는 사천 쥐포. 그 정직하고도 맛깔스러운 명품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