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따라 물때 따라

도보 여행자의 시선_걸으며 생각하며 Ep.3

전설 따라 물때 따라
이순신바닷길 3코스, 사천대교~월등도

글・사진 조영아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천 개의 바람이 된 아이들을 생각하며

세월호 8주기 아침이다. 공교롭게도 큰애 생일이기도 하다. 천 개의 바람이 된 아이들은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겠지.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기억해 주는 것밖에 해줄 게 없어서 미안하다.’던 한 시민의 팽목항 인터뷰가 떠오르고,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김영옥 씨가 부른 노래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오늘 나의 도보 여행길 외로운 듯 외롭지 않은 길동무가 된다.

 

용현면 주문리 봄밭 풍경
사천대교 위에서 내려다본 무지개빛 해안도로

완연한 봄을 느끼며 사천대교 위를 걷다

사천대교 인근에 차를 대고 이순신바닷길 3코스 시점을 찾아 주변을 서성이다 널찍한 황토빛 봄밭을 본다. 한 부부가 멀찍이 떨어져서 자기 앞의 골을 따라 뭔가를 심고 있다.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해도 정갈하게 갈아놓은 밭골에서 오랜 세월 몸에 배인 거짓 없는 부지런함과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진다. 완연한 봄이다.

사천대교 위를 걸어서 건너는 것은 처음이다. 선선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사천대교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Wow! That’s totally awesome! 경외감이 들 정도로 굉장히 멋지다는 말이다. 뒤로는 용현면 무지개빛 해안도로, 앞으로는 서포면, 그 사이로 먼바다를 향한 사천만의 비상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아아, 이 황홀경에 조금 더 머물고 싶지만…, 물때 맞추어 월등도에 들어가려면 오늘만은 늑장 금지다! 어제 인터넷에서 확인한 비토리 물때표에 따르면 1시 언저리에는 월등도 입구에 도착해야 한다. 얼른 가자!

 

구포마을 한 농가의 소 외양간
중촌마을 부근 사는 할머니와 손자

어린 시절 단짝 친구, 소 이야기 그리고…

사천대교 휴게소에서 좌측으로 내려가 구포마을을 향한다. 사천시 관광안내지도에는 휴게소에서 면 소재지인 구평마을까지 찻길로 곧장 가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길거리 이정표는 구포마을을 가리킨다. 구포마을 한 농가 옆을 지나는데 외양간의 소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나도 모르게 방긋 웃으며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멋쩍게, 이 무슨 반응인가! 어린 시절 단짝 친구였던 소, 더 정확히 말하면 송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탄성이리라. 송아지는 태어난 날부터 걷기는 물론 뛰기까지 한다는 것을 도시 아이들은 알까? 송아지의 긴 속눈썹과 크고 깊은 눈동자가 얼마나 순하고 아름다운지 근접하여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 4남매 공부 밑천으로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 집 송아지는 나의 단짝 친구였다. 그 아련한 추억에 관한, 찰나의 소환이 나를 미소짓게 한다.

중촌마을에서 대포마을로 향해 가는데 창모자로 멋을 낸 할머니와 손자가 지나간다. 어린 손자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도 야무지게 잡은 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는다. 걸어가는 뒷매에 행복이 어려 있다. 아이가 커서 내 나이가 되어서도 저 고사리손으로 느낀 할머니의 거칠면서도 따스한 체온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할머니께 안부 전화라도 드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고.

 

선창마을에서 바라본 솔섬과 비토섬
토끼로와 거북길 갈림길

드디어 별주부전의 고향, 비토섬에 당도하다

이제, 면 소재지인 구평마을이다. 서포 전통시장은 오일장이라 매 4일, 9일에만 열려 오늘은 한산하다. 염전마을과 아포마을을 지나 선창마을에 이른다. 선창마을에서 바라본 솔섬과 비토섬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어찌 저리 아름다울까, 탄성이 절로 난다. 비토교를 건너 드디어 별주부전의 고향, 비토섬에 당도했다! 섬 어귀에 ‘별주부전의 고향 비토섬’이라 적힌 대형 명패가 당당히 서 있다. 길옆에는 캠핑장들이 즐비하고 코로나 이후 인기가 급상승한 풀빌라도 보인다. 중병을 앓고 있던 용왕의 명으로 토끼간을 구하러 뭍으로 간 별주부(거북이) 이야기, 그 전설을 품고 있는 섬이 바로 비토섬과 월등도이다. 이제부터는 토끼와 거북이가 길을 안내한다. 토끼로와 거북길 갈림길에서 나의 선택은, 거북길!

 

수협공판장 앞 걸대식 굴 양식장
하봉마을 인근 굴 양식장과 수상 굴막

서포 굴이 여무는 자리 & 별학도 노부부 이야기

한적한 거북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으니 수협공판장이 보인다. 낙지포라 불리우는 곳이다. 낙지포 앞 바다에는 걸대식 굴 양식장이 곳곳에 있다. 서포 굴이 여무는 자리, 바로 이곳이다! 도로 옆으로 쭉 늘어선 굴막에서 굴을 까던 어머니들이 길거리 가판을 벌여놓으셨다. 가까이 다가서는 여행자를 격하게 반기신다. 혹 손님인가 해서다. 뚜벅이라 사고 싶어도 들고 갈 수가 없노라며 얼른 인사하고 길을 나선다. 관광버스라도 오면 좋으련만.

얼마 안 가서 해양낚시공원이 있는 별학도가 보인다. 널찍한 주차장도 있고 화장실도 제법 깨끗하다. 한 10년 전쯤 TV 인간극장에 별학도의 유일한 주민인 갑수 씨와 점순 씨가 소개된 적이 있다. 당시 50년 넘게 이 섬에 산 칠순의 노부부는 5남매가 열어준 금혼식을 행복하게 치르셨는데… 여전히 섬에 살고 계시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없었던 보행교와 산책로에 주말이라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해양낚시공원이 있는 별학도

바다가 열려야 갈 수 있는 곳, 월등도

비토섬 끄트머리에 하봉마을이 있다. 하봉 정류장 옆에는 토끼와 거북이 조형물이 있고, 거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월등도, 오른쪽으로 가면 선창이다. 별주부전의 마지막 이야기가 스며있는 곳, 월등도는 하루 두 번 바다가 열려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걸음을 재촉한 덕에 월등도 입성에 성공했다! 섬 초입에 캠핑장이 있고 토끼섬과 거북섬에는 걷기 좋은 해안데크가 놓여 있었다. 간조기의 월등도는 사방이 갯벌 천지다. 나름 갯벌 뷰view도 볼만하다.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더러 있지만, 나라면 자연과 호흡하며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편을 선택하지 싶다. 이 섬의 터줏대감격인 토끼와 거북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 개인적인 지식과 생각에 의존하여 작성된 글이라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일 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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