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어느 날 아는 동생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동네에서 떠도는 길고양이를 방금 막 구조했는데 당장 임시보호자를 구할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언니가 좀 맡아주면 안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평소 들판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서 친해졌던 동생은 아주 오랫동안 길 위의 동물들에게 대모 노릇을 해오고 있는 기특한 친구인데 이런 부탁을 해온 것은 처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동물이라면 길을 가다가도 구석진 곳이나 차 밑에 있는 개나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두고 엄마는 네 눈에는 짐승들만 보이느냐고 할 정도로 동물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개를 키워 보긴 했으나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임시보호만 하자고 데려온 녀석은 회색빛 털이 빗질이 안될 정도로 떡진 상태였고 앙상하게 마른 몸과 이빨 하나는 부러져 있고 혓바닥은 조금 잘린 흔적이 보일 정도로 길 위에서의 고단한 삶이 남아 있었다.
첫 만남에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내 손에 온몸을 맡긴 채 겁먹은 눈을 깜빡이며 기대어 있는 그 작고 가냘픈 존재의 떨림이 그대로 느껴져 얼마나 안타깝던지… 우여곡절 끝에 나는 녀석의 집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일단 씻기고 보니 에메랄드빛 초록색 눈동자가 아주 예쁜 아가씨였다. 나중에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의사선생님이 페르시안 혈통이며 중성화가 되어 있고 길 위에서 얼마나 떠돌았는지는 모르나 약 1년생쯤으로 추정된다고 하셨다.
이름은 처음 보자마자 딱 떠오른 게 볼품없는 꼬리에 잿빛 털을 가진 재투성이 아가씨가 생각나서 신데렐라(신디)라고 지었다. 부디 유리구두를 찾은 신데렐라 공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페르시안 자체가 조용하고 우아한 성품을 가졌는데, 신디는 까칠 도도함으로 그 아우라를 내뿜게 되었으니 우리는 기꺼이 호박 마차를 이끄는 시종이자 수발을 들어주는 집사가 되기로 자청하게 되었다.
사실 별 존재감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잠자거나 새 모이만큼 먹거나 조용히 지켜보다가 장난을 조금 치거나 하는 신디는 흔히 말하는 개냥이도 아니고, 아주 조용하며 기분이 좋을 때나 요구 사항이 있을 때 그저 발목을 시크하게 스치며 작게 에옹~거리는 게 전부다. 그런데 이 녀석의 그 작은 몸짓이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 큰 의미가 되었다.
내가 준 밥을 당당하게 먹고 얼굴, 앞발, 뒷발, 잘 닿지도 않는 배… 구석구석 뒷다리를 하늘로 쭉 뻗고 똥꼬까지 열심히 그루밍을 하는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혼자 무엇인가에 집중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전생에 고양이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애정을 느끼게 하는 저 존재는 내게 작고 섬세한 것들에 대해서 돌아보게 했고, 나아가 길 위의 생명체에게도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들판의 풀꽃들도 하나하나 제시간을 견디며 산다는 것과 땡볕과 비바람, 냉혹한 추위에도 수많은 생명체가 허투루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을 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왔다. 아니 처음부터 내 삶 속에 속해 있었던 것 같았다.
사람도 늙듯이 인간의 수명보다 훨씬 짧은 고양이의 시계는 요즘 자주 골골거린다. 나는 때때로 그 째깍거리며 빨리 흘러가는 고양이의 시계 소리가 아프다. 유한한 삶을 사는 존재들 자체가 모두 슬프고 아름답다.
실컷 잠을 자다가 우아한 몸놀림으로 기지개를 켜거나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는데도 그녀의 안녕이 곧 나의 안녕이 된 것이다.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감사한 존재가 내 발치에 있다.
“그때 내가 데려온 것은 그저 평범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아니었어. 나는 고양이의 고상함을 데려온 거야. 세상사에 욕심이 없는 듯 그 한없이 무심한 태도, 그 예의 바름, 인간 가운데 탁월한 자질을 지닌 자들과의 친화력… 그런 것을 말이야.”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암고양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