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창생들과 찾은 청널공원

글 ‧사진 김도숙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에서 내려 온 친구와 삼천포 사는 친구들을 만났다.
점심을 먹은 뒤라 차도 마시고 산책도 할 겸 청널공원엘 올랐다.
한겨울인데도 남쪽 지방인 삼천포는 그다지 춥지 않은 곳인데, 그날은 유난히 포근하여 산책하기 좋았다.
동창생들과 청널공원을 오르며 예전에는 이곳을 ‘청널굼터’, ‘청너리굼티’ 라고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 ‘굼터’라는 어원은 잘 모르겠다. 이곳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인데다 비좁은 골목길을 올라가야 하는 곳이기에 우리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달동네 같은 곳이었다.
삼천포항에서 오가던 어선이나 여객선에 기름을 대주거나 배 수리를 위한 디젤이나 공업사들이 청널굼터 아래에 많았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때면 기름 냄새나 조개나 굴 등 어패류를 손질하는 갯가 특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또, 꼬불꼬불한 계단을 따라 오르는 골목길에는 집들이 꽤 많았다. 이곳에서 주로 아녀자들은 쥐고기 껍데기를 벗기거나 조개를 까며 생계를 꾸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수도시설이 없던 때에는 아녀자들은 양동이에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오르막을 올랐을 것이다. 힘겨운 삶의 무게만큼 가파른 길을 오르며 숨도 찼을 것이다.

지금 청널굼터는 깨끗이 정비된 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많은 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과 어린이놀이터도 생기고,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는 정자도 생겼다. 키 큰 사철나무와 동백나무, 벚나무 등이 조성되어 잘 가꾼 정원을 이루고 있다. 또, 푸른 지붕을 머리에 이고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이국적인 풍차도 있다. 풍차 안으로 들어가면 삼천포 시가지와 삼천포 앞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동쪽으로는 멀리 화력발전소 굴뚝도 보이고, 노산공원과 삼천포수협, 용궁수산시장, 서쪽으로는 삼천포대교와 대방, 남쪽으로는 삼천포 앞바다에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과 정박해 있는 배들, 북쪽으로는 와룡산이 삼천포시가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청널공원 풍차
청널공원 조형물

공원에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도 생겼다. 이름 하여 ‘카페 청널’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침과 낮, 해질 무렵 또, 저녁의 바다는 빛에 따라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 느낌이 다르다.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아도 그저 좋다.
오랜만에 동창생들과 카페에 앉아 바다가 그려내는 잔잔한 풍경을 보며 차를 마시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카페청널
우정은 구수한 라떼처럼
청널공원 벤치

어느 시인은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건만 우리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다이리라. 고향을 떠나도 늘 그리운 건 삼천포 바다였다.
다시 찾은 청널공원에서 언제 보아도 정겨운 건 고향의 산과 바다이다.

오랜 세월 삼천포항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우뚝 서 있는 청널공원의 풍차와 나무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고향을 지키며 유유자적하게 늙어가고 싶다.

 

청널공원에서 바라 본 삼천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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