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행운 – 삼천포로 빠지는 일

풍경을 잇다 사람을 담다 – “잇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행운 – 삼천포로 빠지는 일

 

쥐포 인연 달고 삼천포로 빠져버린 30년

30여 년 전 나는 삼천포로 빠졌다. 잘못해서 빠진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빠졌지만 얼마간 이 깊고 먼 타향의 아득함에 매몰되어 다시는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삼천포까지 이어진 음침한 플라타너스 터널을 내려오면서 오지로 끌려가듯 와룡산이 위협했고 끝없이 밀려오는 사천만은 머언 먼 무인도로 나를 잡아 갈 듯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모든 게 암울했고 멋도 맛도 아득하기만 해서 나는 잘 가다 삼천포로 빠져버린 불운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었다. 아마도 6학년 때 경주 수학 여행지에서 먹었던 구운 쥐포의 첫 매력이 이 질기고도 감미로운 인연의 시초가 아니었나 짐작해 볼 뿐이다.

진삼선 철도 개통식 모습
진삼선 종착역인 삼천포역

아픈 아킬레스건 같았던 “잘가다 삼천포로 빠지다”

어떤 얘기나 일이 뜬금없이 곁길로 새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때 “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고 한다. 장사꾼이 진주로 가야 하는데 삼천포로 잘못 들어 땡전 한 푼 건지지 못했다는 엉뚱한 근원도 있고 삼랑진에서 기차를 잘못 타 삼천포까지 오는 낭패를 겪었다는 군인들의 웃지 못할 사연도 그럴싸해 보인다. 당시 진주와 삼천포를 오갔던 진삼선 철길을 떠올려 본다면 진주쯤에서 선로를 잘못 조작해 삼천포까지 빠져버린 상황이 전혀 엉뚱하지는 않으나 뱃길 또한 성행한 것으로 보아 한려수도 구절양장 같은 뱃길에 자칫 항로를 이탈하면 삼천포 항구로 빠지기 십상이었다는 이야기도 아예 헛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유래가 무엇이든 간에 부정과 후회의 의미가 내포된 이 말이 당시 인구에 자주 회자되면서 지역 언론에서도 사용을 금지하자는 보도가 많았다고 하니 삼천포 사람들에겐 아픈 아킬레스건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진삼선 이정표
진삼선 죽림역의 옛 모습
진삼선 죽림역의 철길
진삼선 사천역앞 철로

삼천포 지명 전국에 알렸던 역설적 유물

그 후로도 적잖은 언론과 방송 매체는 물론 연예인들까지 가세해 이 말을 생각없이 뱉었다가 곤혹을 치루곤 했었다. 아예 시민 항의단이 상경해 사과를 받아내는 해프닝도 벌어졌으니 삼천포 사람들의 명예와 자존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항변 덕이었는지 시나브로 이 말은 수그러 들었고 그와 함께 시외버스라는 신문명의 등장으로 철도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진삼선의 영화도 저물어 갔다. 이제는 서울로 제주도로 하늘과 바닷길이 사통팔달 열려 있고 사천이라는 통합시로 관광과 항공우주 시대를 주도하고 있어 그 옛날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다”라는 말은 들어보기도 어려울 만큼 유물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보자면 이 말로 인해 변방의 항구였던 삼천포가 세상에 알려졌고 지명에 대한 가치와 명성 또한 명품으로 유유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모두 부정할수 없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진삼선 진주 예하리 일대
진삼선 철길위를 달리고 있는 화물열차
부산~여수를 오가던 엔젤호의 모습(전시용)
삼천포 옛사진

행운이 있어야 가능한 “삼천포로 빠지는 일”

이제는 잘 못 빠지는 삼천포가 아니라 마음먹고 와야 만날 수 있는 행운의 고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더이상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운으로 그 가치를 키우고 있다. 30여 년 전 나는 이미 삼천포로 빠졌으니 행운의 주인공이라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는 삼천포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어 멋과 맛의 마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용궁이 살고 있는 지리적 멋을 품고 시향이 샘솟는 문학적 멋과 충무공의 얼이 서린 역사의 멋이 살아 있는 삼천포에는 그 멋을 가꾸는 짭조름한 음식과 천년의 살가운 바람과 항구의 훈훈한 사람맛이 삶과 쉼의 공간을 엮고 있다. 그 멋과 맛의 속내는 다음호에서 만나고자 한다. 끝.

삼천포 옛사진
삼천포 옛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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